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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6>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6>
  • 서휘산
  • 승인 2013.06.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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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42)
 그러나 그의 가슴은 묘한 감정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에 넘치는 황홀감이기도, 캄캄한 적막감이기도 했다. 아마 이런 감정은 이제 앞으로의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백지한은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는 아기가 어리석게만 생각되었으나, 앞ㆍ뒤ㆍ옆을 돌아보지 않고 그 젊음이 사실 부럽기도 했다.

 하긴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잖은가…….

 십대 후반의 불같았던 시절, 서른이 훌쩍 넘은 유부녀를 사랑하기도, 어느 산사의 비구니를 사랑하여 그 절 주위에서 해가 저물도록 서성이곤 했던 그 아름답던 날들…….

 그 순진하고도 무분별한 사랑이 때론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당시엔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했다.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마냥 알고 싶고 다가가고 싶었던 날들…….

 그 때 그 연륜 있는 여성들은 얼마나 가슴 설레게 다정하고 다감하게 다가 왔던가! 인생에 있어 누군가를 이성(異姓)으로 사랑하는 연애시절만큼 찬란한 때는 없을 것이다.

 백지한은 지나간 그런 날들이 아득히 그리울 때가 많았다. 그 때의 그 여인들이 눈물나게 보고싶은 것이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헤어지겠지만 스물 안팎의 사랑은 그렇게 예쁘고, 슬프고, 위험한 것이었다.

 백지한은 당혹스러웠지만 아이의 감정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 이 사랑스럽고 가련한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어든 다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사랑해 주리라 말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녀와 나눈 자연스럽고도 끈끈한 이 행복이 끝나고 말리라는 불안이 그의 가슴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그의 손이 아이의 손을 잡으며 정적을 깼다.

 “수련아.”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살며시 보냈다. 눈물 고인 두 눈이 슬퍼 보인다.

 “사랑은 말이야.”

 “……….”

 아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사랑은 때로 시도 되고, 노을도 되고, 꽃과 나비도 되지만, 그게 악마가 장난을 치는 마술과도 같은 것이라, 언제 어떻게 무슨 해악을 끼치고 사라질지 모르는 거란다.”

 “……….”

 아이가 거듭 침묵했다. 그 침묵을 향해 그가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그러니 애욕의 티끌을 네 가슴에 담지 말거라.”

 순간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지만 전 사랑의 노예가 되고 싶은 걸 어떻게 합니꺼?”

 “……!”

 아이의 눈이 필사적이다.

 “아저씨이.”

 “그 욕망도 아침 이슬처럼 금방 사라지고 만다!”

 백지한의 말끝에 단호함이 울리자 아이의 그 큰 눈에서 눈물이 자르르 흘러내렸다. 장밋빛으로 넘치던 그 얼굴이 시드는 꽃처럼 핏기가 가시고 없었다. 백지한의 가슴이 옥죄어 오는데 문득 아이가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한동안 슬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장한 눈초리로 백지한을 노려보던 그녀가 이윽고,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바보!”

 “……!”

 백지한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자 아이는 몸을 홱 돌렸다.

 

그 순간, 전봉준과 이방언이 다가가자 지키고 있던 행자 둘이 목검을 빼어들고 가로막았다. 그리고 윤행자가 물었다.

 “누구시지예?”

 “우린…….”

 전봉준이 입을 여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수련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백지한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아!”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뿌리며 병실 문을 거칠게 닫았다.

 “수련아!”

 백지한이 거푸 불렀으나…….

 “바보, 바보란 말이야.”

 아이는 바보를 외치며 달려나갔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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