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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4>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4>
  • 서휘산
  • 승인 2013.06.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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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40)
 “예. 스님.”

 “그러나 각오는 해야 할 걸세.”

 “……?”

 “자네의 행복을 죽음과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거이 뭔 말씀이다요?”

 오랜만에 이방언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전봉준이 각오 어린 어조로 물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요?”

 “병원에.”

 “어느 병원……?”

 “그건…….”

 말을 꺼내던 영봉이 입을 닫았다. 다가올 전봉준의 죽음이 또다시 안타까운 것이다. 수련을 한 걸음이라도 빨리 만나면 그만큼 빨리 죽어야할 전봉준의 운명이다. 그 운명을 풀어줄 힘이 있다면…….

 그러나 그건 영봉의 연민 어린 소망일 뿐.

 영봉이 다시 침묵하자 전봉준이 간곡하게 불렀다.

 “스님.”

 “……….”

 “스님.”

 전봉준이 다시 낮고 간곡하게 부르자 영봉은 편치 않은 눈빛으로 전봉준을 바라보다가 떼지지 않은 입술을 어렵사리 벌렸다.

 “창원병원으로 가보게.”

 

그 시간, 창원병원 305호실에서 백지한을 간호하고 있는 수련의 얼굴은 극단적으로 이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새삼 행복했다. 수련은 그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겐 이 병실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줄도 모르고 디내는 신혼방처럼 다가왔다.

 그러다가도 문득 나팔호라는 악(堊)을 가만둬선 안 된다는 그 생각에 이르면…….

 우울감과 함께 불안감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녀는 그 나팔호를 단지 죽이는데 목표를 두지 않았다. 그의 완전한 파멸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놈과 유착되어 있는 비리를 모두 명백히 밝혀야 했고, 백지한 앞에 무릎을 꿇려 참회의 눈물을 흘리도록 해야 했다.

 백지한은 이제 거의 완쾌된 상태였다. 곧 퇴원할 것이다. 수련은 그날이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단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련의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백지한은 모처럼 마음 한껏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그를 간호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그 아이와 얘기하는 그 즐거움이란…….

 이제 수련은 아이라 부르기가 민망을 정도로 젖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고, 갈색의 바닷바람과 햇빛이 피부에서 완전히 사라져 눈부시게 매혹적인 여인이 되고 있었다. 그 미인이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이것저것 얘기를 하며 천진스런 미소를 짓고 깔깔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진정 그녀의 몸짓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에게 새로운 활력이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인데…….’

 백지한은 차를 끓여 들고 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다가 뭉게구름과 같은 희망이 부풀렸다.

 “정녕 이 아이가 원하는 바라면…….”

 절로 뇌인 그의 소망이었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차 드시소.”

 찻잔을 내미는 수련의 목소리에 백지한의 이마에는 진땀이 고이고 있었다. 죄받을 희망이고 철면피 같은 욕심인 것이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는 찻잔을 받아들며 죄지은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차니?”

 “민들렙니더.”

 백지한의 마음을 알리 없는 수련이 생긋 웃었다. 소녀 적의 그 상큼한 웃음이다. 그 웃음에 그는 또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하고 있는 요사이 그는 여자를 보는 눈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몇 년간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은연중에 박힌 ‘여자는 곧 돈이며 악의 근본이다.’ 라는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믿었던 그의 아내 남주마저도 그를 능멸하고 배반했으니…….

 그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았으나 이 아이로 인해 그 편견이 조금씩 깨뜨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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