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2:00 (금)
반복(反復)
반복(反復)
  • 김루어
  • 승인 2013.05.30 21:5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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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어떤 측면에서, 인생은 반복(反復)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나날, 어김없는 계절, 다함없는 일월, 그리고 가정생활에서 학교, 직장생활과 같은 사회생활로 가지를 뻗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큰 원리 가운데 하나가 반복이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이런 반복에 권태를 느끼고, 그 쳇바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기도 하지만, 막상 반복이라는 삶의 쳇바퀴가 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누구나 그 파국적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고는, 반복이 인간에게 축복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축(軸)일수는 있다는 떨떠름한 결론을 수용하게 된다.
 그렇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운동이라 할 수 있는 호흡활동에서부터 말과 글, 기술, 지식, 그리고 일과 놀이…… 심지어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심리영역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에서 반복과 무관한 것은 없다시피 하다. 이렇듯 인간은 반복을 통해서 삶에 적응하고 세상에 적응되어 가는 존재이어서인지, 반복은 대개는 인간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편이지만 이 뒷편에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반복의 어두운 속성인 단조로움이 인간을 권태라는 수렁에 밀어 넣기도 하고, 또 다른 속성인 관성은 잘못 또한 반복시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면적 속성을 가진, 사전적인 반복의 뜻은 거듭해서 되풀이 함 혹은 거듭해서 되풀이 됨이다. 이 풀이는 반복이 주체에 따라 능동과 피동, 즉 인간 개아(個我)가 주체인 반복과 사물이 주체인 반복으로 분류됨을 보여준다. 이런 분류는 가치의 중심에 인간을 놓는 오만의 발로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편리의 장점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주체의 의지가 작동하는 반복이 되겠고, 후자는 주체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반복이 되겠다. 전자라 하더라도 주체의 의지가 능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후자에 속함은 물론이다.
 그러면 반복과 반복이전(反復以前)은 동일한 것일까? 아마, 완전히 동일한 반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반복 또한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일어나는 행위나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반복은 반복이전과는 구별되는 변화(變化)나 차이(差異)를 수반하게 된다. 그런데 변화와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 양자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념이다. 양자를 구별해 본다면, 변화는 주체가 개아가 되는 가치판단이 가능한 차이의 개념이고, 차이는 주체가 인간이외에 사물까지 포함되는 가치판단이 배제된 변화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의 양태가운데 하나인 변화에는 상향성 변화와 하향성 변화가 있다. 왜냐하면, 변화는 주체인 개아의 의지가 투사(投射)된 반복의 결과이고, 그 결과는 가치 판단이 가능한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복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던 간에 주체인 개아는 반복이전에 의지를 작동시켜 반복행위를 할 때 그가 기대하는 변화가 상향성 변화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진보가 본능인 인간이 하향성 변화를 바라지는 않을 터이므로. 상향성 변화를 다른 말로 하면 새로움이 될 것이다. 이 새로움이 반복이전, 즉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여는 단초가 된다.
 반복의 또 다른 양태인 차이는 이미 언급했듯 가치판단이 배제된 변화개념이다. 이를테면 저녁마다 보는 놀이지만 어제의 놀과 오늘 놀이 다른 차이. 매일 먹는 세끼지만 미국식사법과 한국식사법이 다른 차이. 세대마다 반복되는 결혼식이지만, 한국 결혼식과 아프리카 결혼식이 다른 차이. 같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지만 각기 다른 신을 상정하는 이교도간의 신앙대상 차이 등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문화차이나 가치관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열이나 호오차이는 있을 수가 없어 가치 판단이 가능하지 않고 다만 상호인정과 상호수용만이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류사에서 차이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기제가 되어왔다. 특히 NO라고 말해온 소수에게 가해온 박해의 기록은 역사에 낭자한 선혈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이를 바라지 않는 세력의 저항이 따른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역사의 진보에서 지렛대 역할을 해온 세력은 이런 차이와 변화를 추구해온 소수자들이다. 차이와 변화가 가진 공통점은 새로움의 생성이다. 새로움은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퇴보하거나 정체되어 결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내일 모래면 유월이다. 벌써 여름의 문턱에 선 것이다. 해마다 가는 봄을 아쉬워 하지만, 봄은 우리의 아쉬움 따위는 아랑곳 않고 가버린다ㅡ는 소동파의 문자이지만, 이 봄은 그 아쉬움이 더욱 유난하다. 지난겨울 자기변화를 그토록 갈망하며 맞은 봄이었건만, 봄 동안 자기혁신을 만드는 변화는커녕 여느 봄과 구별되는 차이하나 만들지 못한 채 봄을 보내고 말았다는 후회 때문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여름만은 이 봄처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마음의 신들메를 죄며 다시 자기혁신을 다짐해본다, 비록 가을의 문턱에서 또다시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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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2013-06-04 20:37:43
비록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더라도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사는거지 싶어요..

진(眞) 2013-06-02 06:34:54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중얼거리심으로 '다람쥐쳇바퀴생활'이란
말씀을 많이 들어오며 살았습니다. 사실로 살아보니,그런 듯합니다.
반복되는 시간이라 치지만, 분명 다름으로 와 닿는 무엇인가 새로움이
플러스 된 시간들이 아닐까? 시인님 글을 읽으면서 생각도 해봅니다.

개원하고,3주째 들어갑니다.
일상의 반복이아니라 또 다른 도약을
하려고 안간힘을 써봅니다. 시인님께서 늘 주시는 좋은 글들을 거울삼습니다.

이서윤 2013-06-01 12:00:33
반복, 유사 반복
그럼으로 적응과 순응과 때론 능동과 수동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유월의 첫 날
반복 될 생활 속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져 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대선 2013-05-31 10:17:05
글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혹, 내가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 하루하루에 대한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반성을 하게 됩니다.
새로움을 이뤄나가는 반복.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는 것이 많았던 삶을 돌아봅니다.
좋은 글로 6월을 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

이현준 2013-05-31 01:56:19
김시인께서 참으로 이 시대에 맞는 좋은 명제를 정하시어 절절히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갇게 했다는 생각.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 신들메를 죄어야 하는 우리 모두입니다. 늘상 있는 반복, 후회...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혁신, 자기혁신을 다짐해야 합니다. 절대 공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아 이 글 좀 읽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