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고교에서는 교실부족과 시험감독의 어려움을 들어 시험장 이동을 하지 않고 원래 자기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교사가 시험지만 다르게 배부하기로 했다. 문제는 듣기 평가가 있는 영어 영역이다. A형과 B형의 듣기 문제가 달라서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응시자 수가 적은 A형 선택 학생을 과학실이나 강당 등 별도의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지도하고 있으나 상당수 학교에서는 지원자 비율이 높은 B형으로 일괄적으로 보도록 강제하고 있다. 학생들이 마음대로 유형을 골라서 시험 준비를 할 수 없다면 선택형 수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 의문이다.
선택형 수능은 학생 수준에 맞게 시험 유형을 나눠 학습 부담을 줄이자는 의도에서 도입됐다. 문과 학생들이 쉬운 수학 A형을 보고, 이과 학생들이 쉬운 국어 A형을 본다면 학습 부담이 경감되고 사교육 억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학교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교과과정에서 각 유형에 맞게 서로 다른 출제범위를 충실히 가르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사교육 의존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수능이 불과 5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내리는 등 대학별 시행계획도 발표했다. 선택형 수능은 이미 3년 전에 예고된 것이다. 그동안 학교와 교육 당국이 얼마나 대비를 했는지 우려된다. 올해 수능을 차질없이 치르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에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험생들의 혼란만 커진다. 대입정책이 하루가 멀다 하게 바뀌면서 올해 수험생들은 자신들이 ‘실험대상’이라는 자조적인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수능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도 나온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입시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볼 때 학생들이 준비가 덜 된 정책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