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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147>
제9화 슬픈 회상 <147>
  • 서휘산
  • 승인 2013.05.30 0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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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23)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이 죽음의 길.

 왜 살아있는 동안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가.

 ‘이 아일 두고 가야하다니.’

 회오(悔悟)와 미련으로 가득한 백지한의 입술이 움직였다.

 ‘잘 살거라.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러나 그의 말은 다시 목젖 근처에서 삼켜졌고 대신 손이 수련의 손을 잡으려다 추락했다. 그 무력한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지나간 아이와의 순간 순간들, 행복한 날들은 행복한 대로, 불행한 날들은 불행한 대로 온통 회한뿐인 그 날들…….

 이 가련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력하고도 불행했던 날들이었건만…….

 지금 그 날들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아쉽고 그리워 가슴이 아린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응?’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려 막 불을 끄고 누웠던 영봉은 다시 일어나 앉아 수화기를 들었다.

 “스님 저 수련입니더.”

 “오, 수련화. 이 밤에 어쩐 일인고?”

 거의 울음에 가까운 수련의 목소리에 영봉은 심상찮음을 느끼고 황황히 불을 켰다.

 “아저씨가, 아저씨가…….”

 “왜? 아저씨를 못만났더나?”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당했습니더.”

 “뭐야!”

 영봉이 소리치며 문득 나팔호를 떠올렸다. 걱정을 안한 건 아니었으나 이렇게 빨리 해치려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깡패들한테?”

 “예, 스님.”

 “지금 어디고?”

 “창원병원 응급실입니더.”

 “알았다. 내 곧 가마.”

 수화기를 내려놓은 영봉이 어금니를 물었다.

창원 중앙동에 있는 올림픽 호텔 1205호실이다. 나팔호가 갈색쇼파에 앉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작두는 나팔호 앞에 꿇어앉았다.

 “죽이지 못했다고?”

 좌절과 불안이 뒤얽힌 나팔호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죄송합니다. 청장님. 그러나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잔뜩 풀이 죽어 기어드는 목소리다. 십 년을 나팔호가 함께 일했지만 처음 겪는 실패였다.

 “계집은?”

 “실은 계집이 도망가 신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이런 병신 같은!”

 나팔호가 실내화를 벗어 작두에게 던졌다. 실내화는 작두의 오른쪽 볼때기를 때리고 떨어졌다.

 “도대체 몇 놈이나 갔는데……. 에이!”

 나팔호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대단한 놈이었습니다. 청장님.”

 “그깟 놈이 대단할 게 뭐 있나. 고작 태권도 4단에 유도 3단인데.”

 “그 놈은 택견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택견?”

 나팔호가 한쪽 입을 비틀었다.

 “예.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춤은 자식.”

 나팔호가 빈정됐으나 작두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흔들거렸다.

 “대단했습니다. 그러고 막판에 전봉준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전봉준?”

 일그러진 얼굴로 나팔호가 작두를 힐끗 노려보았다.

 “예. 강봉걸을 꺾어서 화제가 됐던 그놈 말입니다.”

 “그 놈이 왜 거길?”

 “그건 모르겠습니다.”

 “으흠…….”

 손가락으로 눈썹을 긁는 나팔호의 한숨이 깊고 길었다. 그 한숨 끝에 작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청장님.”

 “왜?”

 “백지한 그 새끼 좀 이상한 헛소리를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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