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2:00 (일)
제9화 슬픈 회상 <146>
제9화 슬픈 회상 <146>
  • 서휘산
  • 승인 2013.05.28 2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9화 슬픈 회상 (22)

수련이 칼맞은 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백지한은 그녀의 나머지 손을 힘없이 쥐었다. 감은 눈앞으로 진해 앞바다, 그 황홀한 풍경의 잔영이 펼쳐졌다.

‘아름답군…….’

그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지나간 날들이 한바탕 꿈같기만 했다. 애절하고도 아스라한…….

가련한 수련을 두고 가는 게 아쉬웠지만 죽음에 대한 체념에 젖어들면서 그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해졌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던가.

인간은 죽음 직전에 절정의 환희에 도달한다고…….

언젠가는 떠나야할 이 곳,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했던 이승의 나날들이 이제 이렇게 끝나고 있는 것이다. 그 인연 훌훌 털어 버리니 그 동안 가졌던 사랑도 미움도 모두 한 조각 구름처럼 가볍기만 하다. 수련에게 뭔가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의식이 가물가물 꺼져 가며 아랫도리가 팽팽하게 발기되어 있는 그에게 수련이 울부짖고 있었다.

“죽지 말아요, 죽지 마. 제발…….”

 “예쁜 가시나들은 죄다 술집허고 깡패들이 끼고 있다더니…….”

 숨을 헐떡이며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간 정봉준은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곧 신호가 떨어졌다.

 “여보세요?”

 “예, 기숙삽니다.”

 백두급 유망주인 1학년 김호동의 목소리였다.

 “호동이냐?”

 “예! 선배님.”

 “장태장군 좀 바꿔라.”

 “왜 안들어오십니꺼? 선배님.”

 전봉준이 목소리를 높였따.

 “노닥거릴 시간 없응께 빨리 바꿔 시꺄!”

 “알았심더 선배님.”

 놀란 김호동이 허겁지겁 장태장군을 부르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리고 곧 이방언이 받았다.

 “성님 지금 어디요?”

 “너 좀 지금 나와야겄다.”

 “코치님이 안 내보내줄 건디요.”

 “긍께 살짝 모르게 빠져나와야지 시꺄.”

 “어디로……?”

# 수련의 울무짖음 속에 백지한이 실려간 곳은 체육공원과 인접해 있는 창원병원 응급실이었다. 잠시 의식을 되찾은 그의 귓전에 담당의사의 무덤덤한 목소리와 수련의 애절한 목소리가 겹쳐져 들려왔다.

 “아가씨가 배를 막고 왔기 때문에 피가 속으로 스며들어 오히려 수술이 더 어려워졌소.”

 “죄송헙니더. 죄송헙니더. 어떻게든 좀 살려주시소, 선생님.”

 수련의 눈물이 백지한의 얼굴에 처절하게 방울져 내렸다. 그 절규와 눈물에 백지한은 진정 슬펐다.

 ‘이 아일 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순간, 수련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삶에 대한 미련과 함께 지나간 그녀와의 시간들이 ?르게 되살아났다.

 온통 회한(悔恨)뿐인 그 시간들이…….

 그는 무거운 눈을 들어 울고 있는 처녀를 올려보았다.

 ‘잘 있거라. 수련, 이렇게 죽어 미안하다.’

 말은 목에서 막혔고 수련이 허물어지듯 다시 울부짖었다.

 “내 얼굴이 안보입니꺼? 제발 정신 좀 차리이소, 제발…….”

 아껴주고 또 아껴줘도 아쉬움이 남을 사랑스러운 아이의 절규 앞에 새삼 삶에 대한 미련이 몰려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