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은 틀림없이 복수를 위해 나타난 것이리라.`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황금기를 감방에 갇혀 있었으니 그 동안 쌓인 원한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는 담배 한 가치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생각에 골몰하다 입을 열었다.
"애들 지금 몇 명이나 되나?"
"열 명입니다."
"그럼 걔들한테 감시하라 하고 넌 지금 날 만나야겠다."
"알았습니다. 청장님."
전화를 끊은 나팔호는 외투를 걸쳤다. 작두는 나팔호가 필요할때마다 꺼내 쓰는 안전한 존재였다. 그는 가팔호가 가장 믿는 해결사요, 정보원이며, 마약 공급원이다. 지금까지 작두라면 안심해도 됐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불안했다.
# 팔에 매달린 수련을 데리고 걷던 백지한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분식집 앞이었다.
"애걔 겨우?"
이제 가슴을 진정시킨 처녀가 눈을 흘기자 백지한이 빙긋 웃었다.
"감옥 안에 있을 땐 밀가루 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더구나."
"불쌍한 아저씨……."
백지한과 수련은 아직 저녁노을이 남아있는 서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녀가 물기 배인 눈으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이젠 성숙하고 침착했다.
"예쁘게 컸구나."
그 말에 처녀가 살풋 웃고 고개를 숙였다.
"자취집은 어디니?"
"무궁화 아파트."
"어디 쪽인데?"
"밤밭고개 쪽."
"주인은 괜찮고?"
"예, 한 식구처럼 잘 지내고 있어예."
"네가 워낙 착하고 예쁘니까."
"피이-."
처녀는 눈을 흘기고 볼우물을 만들었다.
"아저씬 수련이라면 무조건 예쁘고 착하지예?"
"그럼 아니니?"
처녀가 대답 대신 환히 웃었다. 움푹 패인 그 보조개가 예쁘다.
"뭐 드실랍니꺼?"
그 사이 다가온 40대 주인아낙의 말이었다.
"수제비 주세요"
남자가 말하자 처녀도 따랐다.
"저두요."
# 장복산 문수암 근처의 일식집으로 나팔호가 들어서자 마담이 화들짝 반겼다.
"어서 오세요, 청장님."
"그래 잘 있었나?"
"예, 청장님 덕분에예."
여자는 불필요하게 상체를 뒤틀었다. 동공 속에 자리잡은 검은 창이 유독 많아 남자의 불알정기를 순식간에 고갈시킬 전형적인 색골로, 그 미모에 반해 그녀와 살다가 마흔도 넘기지 못하고 고자가 되버린 남자가 벌써 넷이었다. 그 살인적인 여자에게 나팔호가 물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예. 저쪽 별실에 계세요."
색골의 안내를 받아 나팔호가 방으로 들어서자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작두가 일어섰다. 서른 안팎의 작두의 그 몸집도 나팔호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비만했다. 그리고 주름진 그 얼굴은 우악스럽고 험상궂다.
"앉아."
나팔호가 먼저 앉으며 턱을 들었다. 그리고 여자를 힐끗 보았다.
"당신은 부를 때까지 나가 있고."
"예, 청장님."
색골이 나가는걸 기다렸다가 나팔호는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물었다.
"혼자 있더나?"
"아뇨, 어떤 계집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계집?"
"예. 여대생으로 보였습니다."
"여대생?"
"예."
나팔호가 술을 반잔쯤 들이켰다.
`누구지? 녀석에게 여대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