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51 (토)
제9화 슬픈 회상 <126>
제9화 슬픈 회상 <126>
  • 서휘산
  • 승인 2013.04.28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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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2)
전봉준은 수련을 경탄스럽게 바라보았다. 뭔가 신념이 담긴 듯한 그 부리부리한 눈에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어 보인다.

 ‘퇴짜를 맞으면 어쩌지?’

 초조한 불안 가운데, 이윽고 전봉준이 잔디밭에서 벌떡 일어섰고 이방언도 꽃다발을 들고 몸을 세웠다. 전봉준이 손가락을 뻗으며 말을 더듬었다.

 “야, 저 저, … 저 천사여.”

 “머리를 똑같이 땋아 내린 쟈들 말이요?”

 전봉준이 고개를 돌려 이방언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말조심허랑께.”

 “알았구만이라 성님.”

 이방언이 불퉁한 얼굴로 다시 얼굴을 돌리자 전봉준도 그에게서 시선을 거둬 수련을 바라보았다.

 “그 중 이파리색 원피스 입은 천사여.”

 “알았구만이라.”

 대답과 동시에 다가가던 이방언이 주춤 멈춰 섰다.

 ‘과연……!’

 가까이서 본 여학생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의 가슴이 한순간 컥 하고 멈췄던 것이다. 물결치는 흑발을 곱게 땋아 내린 그 얼굴은 밝고도 간결했다. 정녕 천하장사 전봉준이 잠 못 이루며 가까이 가보고 싶어할 인물이었다. 한 호흡을 길게 들이마셔 용기를 낸 이방언은 다소 거친 걸음으로 다가가 수련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어…….”

 “무슨 일이지예?”

 갑작스레 꽃을 들고 출현한 거구 앞에서 단짝인 오희라가 물었고, 수련은 말없이 두 눈만 깜박거렸다.

 “무슨 일입이꺼?”

 재차 묻는 오희라의 다그침에,

 “거그는 관심 없고.”

 이방언이 무참한 무시를 가하며 수련에게 꽃을 내밀었다. 수련은 꽃 대신 이방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씨름하는 선배님 같은데…….”

 그 말에 굳었던 이방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나를 아요?”

 “지난번 씨름판에서 뵌 것 같아서…….”

 “아따 이거 영광이요 이.”

 “와예?”

 “이런 미인이 알고 있당께.”

 # 잠시 후, 학교정문의 오른쪽 골목길에 있는 전통찻집 ‘도투마리’에는 수련과 전봉준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실내 곳곳에 베틀, 고가의 문짝, 우물, 흙으로 어머니 형상을 빚은 숯가마 등 고물들을 배치해, 전통술을 겸해서 파는 곳이었다.

 “나는 전봉준이라 헝마요.”

 숫기 없는 전봉준은 그 우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럽다. 그러나 가식 없는 수련의 발랄함은 그 조심스러움을 순식간에 깨버렸다.

 “알고 있습니더. 지난번 강봉걸 선수를 이겼다는 것도.”

 “어떻게……?”

 “선배님이 싸우는 경기를 봤어예.”

 “그래요?”

 “선배님 경기는 역동성과 함께 속도감이 있어 좋아예.”

 전봉준의 커다란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졌다.

 “앗따 이거 참…….”

 전봉준은 벌어진 입을 한참이나 다물지 못하고 수련을 경탄스럽게 바라보았다. 뭔가 신념이 담긴 듯한 그 부리부리한 눈에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어 보인다. 그 모습에 수련이 빙긋 웃었다.

 “와예?”

 “우리 학교에 이런 매혹적인 후배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소.”

 “피이.”

 수련이 쌩긋 웃었고 전봉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자부터는 내가 말을 놔도 되겄소?”

 “그리 하시소.”

 “또 만나주겠소?”

 “…….”

 시원시원하게 터지던 수련의 대답이 없다. 준수한 전봉준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며들었다. 흐르는 침묵 속에 수련이 상큼 웃으며 어찌할 바 모르는 전봉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묵을 깼다.

 “운동선수헌테 술허고 여자는 사약이나 마찬가지라 카던데예.”

 전봉준이 펄쩍 뛰었다.

 “거, 거가 어디 여자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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