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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혹은 우정에 관하여
벗 혹은 우정에 관하여
  • 김루어
  • 승인 2013.01.31 2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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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가면 혹은 그 반대인 경우라도, 왔으면 반드시 만나고 가기로 약조한 친구가 있다. 여고 때 짝지였던 친구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내려올 때 연락을 한다. 친구일정에 차질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번에도 용무를 끝내고 전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다르게 그녀가 지정한 약속 장소는 평소 만나던 까페나 그녀의 집이 아니라, 물어서 찾아 갈 수밖에 없는 한강변 어느 한정식 집이었다.
 약속시간에 겨우 맞추어 찾아가니 한정식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다짜고짜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동향계 선약이 있다고 하면 그냥 갈 것 같아 이리로 오라고 했어, 대개가 동문들이라 합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모임에 갔다가 마음 상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 인생의 변전에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못해 합석하고 보니, 십여 명의 계원들 대개가 사십여 년 전 고향에서 여중, 고를 함께 다닌 이들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낯설고 서먹했다. 불청객인 탓도 있었겠지만, 기억 속 얼굴들과 현실의 그네들이 잘 매치가 되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염색으로도 완전히 가리지 못한 흰 머리칼, 화장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주름, 보정속옷을 입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비어져 나오기만 하는 살…… 아마, 그네들 눈에 비친 나 또한 그러하리라. 꽃처럼 곱던 그 시절 우리들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보냈을까.
 식사가 끝나고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야 분위기가 편해졌다. 초반에 내게 집중되던 질문도 뜸해졌다. 들어보니, 그네들 삶이나 내 삶이나 신산스럽고 재미없기는 매일반이기 때문일 터였다. 술이 여러 병 더 들어왔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음료수만 홀짝였다. 그런 내게 그네들은 오래 시선을 두지 않고 그네들 화제로 돌아갔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여자들 특유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성장기 추억, 자리에 없는 동문들 근황, 남편 욕, 자식자랑, 남 숭보기, 그리고 생활사…….
 한정식 집에서 나온 모임은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우리 학창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유행하던 노래가 주 메뉴이었음은 물론이다. 아마 동년배 특유의 공유감과 노래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의 발로였을 게다. 음치인 나도 몇 곡 불렀지만, 아무도 흠잡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이크가 옮겨감에 따라 분위기는 이상스러우리만치 애상조가 되어갔다. 달아오른 분위기 혹은 술기운, 혹은 삶의 신산스러움 때문, 아니 어쩌면 그 전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친구, 심지어 흐느끼며 노래하는 친구들마저 있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는 천지를 얼어붙게 하는 혹한의 겨울밤이었다.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부선 마지막 기차를 탔고, 좌석에 앉자 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깼을 때 기차는 낙동강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기차 창밖으로 시린 겨울 달빛에 검게 일렁이는 강물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 얼굴이 거기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헤어질 때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그네들이 하던 말이 다시 들렸다: 우리가 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니? 서로 연락 좀 하며, 그리고 더러 만나며 살자.
 친구라는 말뜻을 생각해본다. 친구란 사귄지 오래되어 만나면 마음이 편한 벗이란 말이다. 그러면, 벗이란 무엇인가. 벗의 고어는「벋」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사 「더불다(與)」가 ㄷ, ㅂ,이 음운도치를 일으켜 이루어진 명사라는 답을 듣게 된다. 이로 미루어 벗을 정의하자면, 벗이란 그에게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즉 껍질역할을 하는 체면 도덕 지위 명성 따위의 장식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내 보여도 허물잡지 않고 더 불 수 있는 마음 편한 상대란 뜻이 되겠다. 인생길은 고단 한 길이다. 어깨를 겯고 누군가와 더불어 갈 수 있다면 훨씬 힘이 덜 들것이다. 그게 친구다. 그런 친구이기 위해서 우정은 기본이다.
 
우정(友情)이라는 말은 벗과 정의 합성어다. 정은 고이는 속성이 있고, 그 정의 주체인 우, 즉 벗은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이는 주체의 행동에 따라 우정이 변할 수 있다는 뜻도 되겠고, 우정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도 되겠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기에 변하지 않는 우정은 아름답다. 이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세속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지라도.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그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내게 있는가? 아니, 이 질문보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우정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 왔느냐? 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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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2013-02-28 14:22:56
그렇지요?
사람사는모습이 102호나 104호나205호나 거기가 거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특별하게 보여도 속을 보면 행과 불행,,,오십보 백보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들의 일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