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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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루어
  • 승인 2013.01.10 1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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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루어의 아침을 여는 시선

 눈이 침침하고,몸이 찌뿌드하다. 너무 오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나 보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창을 연다. 흠칫 한발 뒤로 물러나게 할 만큼 밀려오는 찬바람. 하지만 창문을 닫지는 않는다. 길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는 서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멀리,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와우산이 보인다. 산. 도심에 살지만 창을 열면 산이 보인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다. 하지만 위안만으로는 몸 상태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며칠 동안 책상 앞에만 붙어 있었기 때문일 터!
 옷을 두텁게 입고 밖으로 나왔다. 추위는 짐작한 터수보다는 덜했지만 해가 얼마간 기운 탓인지 거리는 눅진하다. 높고 낮은,고만 고만한 크기의 주택들. 그 주택들 새로 난 길.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 놓은,아직 녹지 않은 검게 얼룩이 진 눈더미들. 두터운 입성으로 웅크리고 오가는 행인들ㅡ칙칙한 잿빛 겨울 오후풍경,그 풍경에서 도망치듯,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서둘러 와우산으로 향한다,전생에 나는 나무였음이 분명하다!
 삼십분을 걷지 않아 산으로 이끄는 소로로 들어섰다. 길 양 옆에는 편벽나무,소나무,상수리나무의 작은 숲들,그 숲들 새로 남아 있는 잔설들이 눈에 부시다. 인적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녹은 눈으로 하여 질척거리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추위 또한 뒷전이다. 시릴 정도로 투명하고 신선한 공기로 하여 나 또한 공기가 된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나는 곧 군락을 이룬 대숲 곁에 멈춰 선다. 고질(痼疾)이 된 시원치 않은 무릎 때문이다.
 서걱이는 댓잎소리에 대숲을 올려다본다. 대숲은 그렇게 키가 크지도,그렇게 굵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한 겨울에도 그 청청함은 여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대는 혹한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절조와 폭서에도 곧게 뻗는 기개로,매화(梅花)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와 세한삼우(歲寒三友)양쪽에 다 들만큼,고인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식물이다. 하지만 상투화되어버린 이런 찬사보다,나는 대를 보면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왜냐하면,대의 속성이 젊은이들 속성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대는 싹을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식물이다. 뿌리부터 먼저 뻗는 영양생식을 하기 때문이다. 싹을 올리는데 4년이 걸리는 종자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데 다른 포유류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대는 일단 싹을 올리면,6~7주 만에 집중성장을 해 어른나무가 된다. 이는 청소년기에 육체적으로 성장이 완성되는 인간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지점은 비슷함과 차이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양자가 다 외면적으로 속성성장을 함으로써,공통적으로 내면이 비는 문제가 발생한다. 빨리 자라려다 보니 속을 채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대는 중간 중간에 마디를 만들어 그 약함을 보완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정신이 육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연,혹은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연ㅡ소위 말하는 혼돈이 생긴다. 얼마 전 입대하기 전에 인사차 온 조카에게서 이런 혼돈을 또 보았다.
 이제 대학 1년을 마쳤을 뿐이고 병역특혜를 받을 수 있는 전공인 조카의 입대는 뜻밖이었다. 조카는 공부를 잘한 죄로 부모의 강권에 따라 적성과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입학한 뒤 많이 방황한다,는 걱정을 그 부모에게 듣긴 했다. 성급한 거 아니니?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군복무동안 그걸 깊이 생각해보겠어요. 군대가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되지. 도피가 아니라 특권행사지요,군 입대는 건강한 청년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잖아요.

 무릎이 좀 나아졌다싶어 다시 걸음을 옮긴다,저만큼 보이는 절 쪽으로. 여기까지 온 길에 부처님을 뵙지 않고  갈 수는 없는 법. 일주문을 지나 대적광전 앞에 이르는 동안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풍경소리만 들릴 뿐. 그야말로 절간 같은 고요. 대적광전에 들어선다. 비로자나불앞에 향을 피워 올리고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삼배를 하면서 기원한다. 조카가,그리고 다른 젊은이들이 혼돈(混沌)에 흔들리지 않고 마디를 만들 수 있도록 가호해주시기를. 삼배를 마치고 부처님을 마주보고 앉는다. 지권인(智拳印)을한 비로자나불이 빙긋이 웃는다: 젊은이들은 혼돈과 방황 속에서 마디를 만드느니라,나 또한 전생에 혼돈이었나니! 라고 말하는듯한 미소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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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2013-01-10 21:42:07
예나 지금이나 애들은 아프게 큽니다.
고통, 마디의 질은 달아질 것이나 총량은 똑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