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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영웅의 귀환 <59>
제5화 영웅의 귀환 <59>
  • 서휘산
  • 승인 2013.01.07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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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행복, 그 썰물 같은 (3)
 "과연 지금 이 나라가 미국이던가, 일본이던가, 한국이던가?
이걸 바로잡을 사람은 백지한! 자네밖에 없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잖아."

 "아직은 뚜렷한 대책이 없어."

 "함께 방법을 찾아 보세나."

 영봉의 말이었다.

 "난 자신 없네. 더 이상 빚을 늘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빚들을 다 떼먹을 생각은 아닐 것 아닌가."

 "그야……."

 백지한이 입맛을 다셨다.

 "제기를 하게."

 "무슨 수로? 이 판국에."

 백지한이 자조를 섞어 내뱉자 영봉이 목청을 높였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닐세."

 "나 역시 그냥 대답하는 게 아니야. 책을 펴낼 돈도 없거니와, 또 펴면 뭐 하나? 팔리지도 않을 책들을……."

 영봉이 부드럽게 본론을 꺼냈다.

 "내 도와줌세. 지난번에도 약속했던 일이고."

 "지금 상태론 일리 억 가지고 될 일이 아니야."

 "다 방법을 세워 뒀네."

 "……."

 "발행인을 내 앞으로 하게."

 "……!"

 백지한을 전면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영봉의 배려다. 탈속한 승려의 신분으로 비록 명의만 올린다 하더라도 사업주가 된다는 것은, 기업 운영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닌 한국의 현실에선 골치 아픈 일인 것이다.

 더욱이 온갖 탄압을 다 받아야하는 개혁성향의 출판업이다.

 풀렸던 백지한의 가슴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영봉이 백미러를 통해 백지한을 바라봤다.

 "물론 명의만 내 앞으로 할 뿐 일체 관여는 않을 걸세."

 "……."

 "앞으소 2년간 비용을 대주겠네."

 "……!"

 "……!"

 백지한과 방수암의 시선이 마주쳤다. 전방을 주시하며 영봉이 계속했다.

 "이 나라엔 글쓰는 이도 많고, 정치하는 사람도 많고, 책을 만드는 자도 많네. 허나 그들은 자신의 장삿속과 명예를 위할 뿐,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자는 없어. 이대로 가다간 내 수차 경고하지만 이 나라는 머지 않아 망하고 마네."

 "……"

 "누군가 이 나라가 망해 가는 걸 막아야 하는데 그게 누구겠는가?"

 `그게 나란 말인가?`

 백지한이 속으로 반문했다. 영봉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공격해왔다.

 "어차피 이 나라의 가련한 중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자 했다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않는가?"

 백지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봉의 질책은 맞는 말이었다. 사내가 한 번 뜻을 세웠으면 그 길에 신명을 바칠 일이다. 사실 영봉의 말대로 지식께나 있어서 책을 쓰고, 그런 책을 펴내는 이는 부지기수로 널려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뿌리가 부처님으로부터 심어졌고, 그래서 부처님과 그 수호신들을 조상으로 섬겨야하며, 그래야만 이 나라가 번영한다는 것을 전해주는 이는 없었다. 아니 극소수의 인물이 있긴 있어도 금방 시들거나 꺾이고 만다. 이것이 이 나라 지식인 세계의 현실이었다. 백지한이 아무 말 없이 창 밖의 허공을 주시하고 있자 영봉이 못을 박듯 말했다.

 "자네가 할 일일세. 자네 말고는 할 사람이 없네."

 "쓸데없는 아부는 말게."

 "아부가 아니라는 건 자네가 잘 알잖는가."

 "맞네."

 방수암이 모처럼 거들고 나섰다.

 "이 나라가 이렇듯 매가리 없이 강대국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는 건, 우리의 뿌리를 모르고 서양인들 흉내나 내고 있기 때문이지. 과연 지금 이 나라가 미국이던가, 일본이던가, 한국이던가? 이걸 바로잡을 사람은 백지한! 자네밖에 없네."

 방수암의 말꼬리마다에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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