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0:10 (토)
세대갈등
세대갈등
  • 김루어
  • 승인 2012.12.27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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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어의 아침을 여는 시선

 십이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12월에 서면, 신년에 대한 기대보다는, 길모퉁이에 선 것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물론, 모퉁이를 돌면 나이만큼 익숙해진 1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중년을 넘고부터는 그 1월이, 익숙한 만큼 불편하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12월에 서면 내 마음은 이율배반적이 된다. 어서 어서 이 춥고 힘든 12월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과, 비록 춥고 힘들지만 아직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신년을 위하여 시간을 더 갖고 싶어 현재를 연장하고 싶은 미련이라는 이율배반의 마음.
 하지만 올해는 유난스레 눈이 잦고 혹한 또한 심해 더욱 쫓기는 기분이었지만 전자에 기우는 마음이 더 컸다. 그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 5년마다 치러지는 국가적대사인 대통령선거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요한 대선 후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에 큰 기대를 갖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선거가 우리 삶과 깊이 관련이 있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녹이거나 푸는 용광로 역할을 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아쉽게도 이번 대선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대선 결과가 발표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에도 아직도 선거결과 분석뉴스가 넘쳐나고 있는 것은, 이번 선거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치열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였다는 반증일터이다.
 선거분석 뉴스 중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단연 갈등이다: 동서갈등, 경향갈등, 계층갈등, 계급갈등, 이념갈등……. 이번 선거결과에는 전술한 이러한 갈등들에 20/30대와 50/60대간 세대갈등이라는 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내게도 세대갈등이라는 말은 참으로 위험하게 들린다. 20/30대와 50/60대는 대략 30년차이고 이는 아버지와 아들 혹은 어머니와 딸들의 년 배 차와 같아 세대갈등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즉자적으로 부모 자식 간 갈등문제로 치환되기 십상이고 사실 그러하기도 하다.
 이들 양세대간 주장을 전문가들 분석에 따라 비교해보면 그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양 세대는 성장과 분배문제, 복지와 고용문제, 안보와 남북관계, 교육관과 역사관을 포함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거진 전 분야에 걸쳐 양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게 이번선거에서 대립해왔지만 결과는 20/30대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스포츠에서의 패배자나 이번에 대선에 출마했다 패배한 후보들처럼 결과에 승복함으로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번 선거결과가 세대 간 갈등의 시발점으로 보일뿐이고 앞으로 더욱 격화될 조짐ㅡ 노인 무임승차반대, 노령연금반대, 노인투표권 제한같은 비이성적인 반발로까지 나타나는 데에 나는 소름끼치는 두려움, 그렇지 않아도 핵가족화 된 가족의 완전한 붕괴를 보는 듯 한 두려움을 느낀다.
 일부전문가들은 이런 세대 간 갈등은 일종의 경제투쟁이어서 경제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지만 20/30대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내 경험상 이런 주장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대책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서

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관용이 없으면 대화자체가 불가능함을 경험한 이들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갈등(葛藤)이라는 말의 어원에 주목한다. 갈(葛)은 칡을 말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말하는데 둘 다 콩과 식물이지만 갈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속성이 있어, 이 두 식물이 한 곳에서 만나면 서로 먼저 감아 올라가려 하기 때문에 일이 뒤얽히게 되는데서 비롯된 말이 갈등이라 한다. 내가 이 두 식물에 주목하는 것은 갈과 등이 서로 감아 올라가더라도 등과 갈이 서로를 부정하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서로가 서로를 꽃피우며 향기까지 주고받는다는 사실에서 세대갈등을 푸는 어떤 시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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