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경제학
신뢰의 경제학
  • 곽숙철
  • 승인 2012.09.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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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nE 혁신연구소장 곽 숙 철
 휴렛팩커드(HP)를 설립한 지 몇 년 후, 공동창립자 빌 휴렛(Bill Hewlett)은 어느 주말에 연장을 가지러 회사 창고에 들어갔다가 창고가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직원들이 필요하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부품 창고와 보관실을 개방한다는 회사의 명시적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부품 창고 개방은 공동창립자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직원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과거에 어떤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는 직원들이 연장과 부품을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창고와 보관실의 경비를 철저히 했다.

 창고가 잠겨 있는 것에 짜증이 난 휴렛은 자물쇠를 부숴서 내동댕이치고 자물쇠가 있었던 곳에 `HP는 직원들을 신뢰합니다` 라는 표지판을 붙여 놨다. 그날 이후 열린 창고는 신뢰의 상징이자 충성심과 창의력을 고취하는 상징이 되었다.

 통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앙갚음을 유도한다. 직원들을 믿지 않아서 생기는 대가는 통제를 가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훨씬 뛰어 넘는다. 뭔가를 제한하거나 벌칙을 부여하면 직원들이 `이제부터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기대는 직원들을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원들을 믿지 않으면 직원들도 회사를 믿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 할 뿐이다.

 입사할 때는 회사를 보고 하지만, 퇴사할 때는 리더 때문에 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리더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할 때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결심한다. 조직 내에 신뢰가 쌓이면 리더는 물론이고 회사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업무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직원의 만족도가 커져서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 높은 신뢰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목표를 세우고 문제점을 의논하면 각자 맡은 업무를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다. 신뢰하는 직원들끼리는 커뮤니케이션도 더 원활하고 빠르다.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긍정적으로 힘을 북돋우며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고,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신뢰는 직원들을 협력하게 만든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의 팀원들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설사 갈등이 생기더라도 건설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리더와 직원, 그리고 직원 서로 간에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업무의 성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신뢰가 없이도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최상의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리더는 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신뢰가 없어도 직원들은 여전히 주어진 업무를 하며, 신뢰가 높은 회사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생산성은 나오기 때문이다. 리더가 직원의 신뢰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회사 설비에 문제가 있다면 제품의 결함이 증가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또한 마케팅이나 영업에 문제가 있다면 시장점유율이 저하할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비즈니스 문제는 대체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측할 수 있지만 신뢰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뢰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실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신뢰를 무시하고 사업에만 초점을 맞추다가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 기업이 직면하는 비즈니스 문제는 `사람`과 관련돼 있으며, 신뢰는 곧 인간관계의 기초이자 리더십의 핵심인 까닭이다.

 다음은 《신뢰의 속도》에서 인용한 스티븐 코비(Stephen M. R. Covey)의 말이다. "신뢰의 속도만큼 빠른 것은 없다. 신뢰만큼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 신뢰의 광범위한 영향만큼 파급력이 큰 것은 없다. 신뢰를 볼 수 있는 안경을 쓴다면 이러한 현실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뢰를 쌓고 키우고 보내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핵심 리더십 역량이다."

 기업에 있어 신뢰만큼 중요한 자산은 없다.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때 조직의 역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한다. 신뢰는 실증하기 어려운 무형의 도덕적 논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라는 것. 리더는 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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