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6:41 (일)
신분의 벽을 ‘꽃’으로 만든 사랑
신분의 벽을 ‘꽃’으로 만든 사랑
  • 성득용
  • 승인 2012.05.29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성 득 용창녕군 문화해설사
 창녕군 역사속의 인물 중에 조선 중기 연산군과 중종 대에 걸쳐 홍문관교리, 동부승지, 예조와 이조참판을 역임하고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이장곤이라는 문신이 있다.

 선생의 본관은 벽진 이고 자는 희강, 호 학고, 금헌, 금재, 우만이며 시호는 정도(貞度)이다. 한성참군을 지낸 승언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김굉필의 문인으로 1495년 연산군 1년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02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1504년 교리로 있으면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로 귀양 갔으나, 함흥으로 도주하여 고리백정으로 불리는 천민집단인 ‘양수척’ 무리에 섞여 살면서 목숨을 유지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추천으로 관직에 다시 임명돼 교리, 장령, 동부승지 등을 역임했으며, 학문과 무예를 겸비한 인물로 중종의 신임을 받았다.

 1512년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듬해에 이조참판이 됐다. 1514년 예조참판으로 정조사가 돼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이후 대사헌 ㆍ이조판서ㆍ좌찬성 등을 지냈다. 1519년 병조판서 재임 시 남곤ㆍ심정 등이 주도한 기묘사화에 참여했으나, 조광조 등 사화에 연루된 사림들의 처형에는 반대하다가 삭직됐다. 1522년 복관됐으나, 여강, 창녕 등지에서 은거생활을 했다. 대원군 때 훼철돼 복원되지 못한 창녕군 성산면 후천리의 연암서원에 제향 됐으며, 문집에는 ‘금헌집’이 있다.

 이상에 소개한 선생의 전력들을 보면 당시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대단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세인 들이 선생을 기억하고 칭송하는 것은 선생이 가졌던 권력과 북방에서 세운 공이 아니다. 선생을 일컬어 후세인들이 “신분의 벽을 넘어 사랑을 지켜 낸 신의 있는 사대부”라고 부르는 것은 도망자 시절에 백정 양씨의 집에 얹혀살면서 얻은 천민 부인 양씨를 버리지 않고 복관된 뒤 당당하게 가마에 태워 상경해 조정에 선처를 부탁해 결국 부인 양씨는 정경부인이 되고, 친정은 모두 천민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실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후대에 많은 문학작품에서 회자돼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명한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에도 등장하는데, 임꺽정은 정경부인 양씨의 조카로 설정돼 있다.

 소설 임꺽정은 비록 완성 되지못한 소설 이기는 하나, 일제강점기 시대에 발표된 가장 규모가 큰 대하역사소설 이며, 천민부터 권력 상층부 사람들의 삶을 치밀하고 자세하게 고증해 그 시대상을 가장 잘 표현한 명작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나마 창녕과 관련된 내용이 여러 번 나와 창녕군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소설이기도 하다.

 근래에도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펴낸 ‘조선의 사랑’ 이라는 책에서도 이 사랑이야기가 다뤄져 글의 말미에 작가로부터 “신분이 달라져도, 운명이 달라진다 해도 마음속에 세운 뜻마저 달라질 수 없다고 믿었던 그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창녕 박물관에는 조선 철종 7년에 선생에게 시호를 내린 교지가 문화재로 지정, 보관돼 있다. 교지에 貞度 라는 시호를 내린 이유를 두 문장으로 적어놓았다. 不隱無屈曰貞 心能制義曰度 이 뜻은 “숨김이 없고 비굴하지 않으니 정 이요, 마음이 능히 의를 지으니 도 이다”이다. 이 두 문장은 후세인들이 ‘정도공’ 이장곤 선생의 인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창녕군 성산면 냇가 작은 소 옆에 선생이 말년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세월을 보낸 ‘금헌조대’가 있고, 창녕군 대합면 대동리 265에 소재한 ‘금호재’에서 해마다 선생에게 제사를 올린다. 금호재 앞에서 오른쪽 길로 돌아서 산으로 약간 올라가면 선생의 묘역이 있어 반상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낸 사나이 중에 사나이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