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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이 생각난다면…
오적이 생각난다면…
  • 박재근
  • 승인 2012.03.11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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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전무이사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권한과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왜 신뢰받지 못할까?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이라는 담시(譚詩)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부정부패로 물든 한국의 대표적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풍자한 작품을 게재한 필화사건으로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 등은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된바 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수혜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이라 일컫고, 이들을 모두 ‘犬(개 견)’자가 들어가는 신조어 한자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등장시켰다. 다섯 도둑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도둑질대회를 벌이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며 등장인물들을 차례대로 풍자해나간다.

 게다가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포도대장은 오적을 잡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돼 오적을 고해바친 죄 없는 민초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고 자신은 도둑 촌을 지키는 주구로 살아간다. 작가는 포도대장과 오적의 무리가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벼락 맞아 급살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오적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회는 여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64년 헌정사는 정쟁(政爭)과 정변(政變)까지 겹쳤지만 정치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파장(罷場)인 제18대 국회(2008.5.30∼2012.5.29)는 부정적 유산을 많이 남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6월 항쟁 이후의 민주화 20년, 두 차례의 여야 정권 교체를 거친 뒤 출범한 18대 국회는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심화ㆍ발전에 역행했다. 첫해를 해머ㆍ전기톱국회로 시작한 후 최루탄 테러, 초유의 현직 국회의장 기소에다 국회 의석 늘리기 등으로 막을 내리려 한다.

 18대 국회의원들이 신뢰받지 못하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게 하는 ‘오적’중 1적은 제 밥그릇 챙기기, 제식구 감싸기에는 물불을 안 가리는 후안무치 정치다.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120만 원씩의 ‘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을 도둑질하듯 몰래 통과시켰다. 가족수당, 자녀학비 수당 등도 슬그머니 2011년부터 신설했다. 뒤늦게 ‘연금 자진 포기’ 운운하지만 국민은 쇼인 줄 다 안다. 2적은 18대 국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무책임 국회’였다.

 국가 백년대계보다는 정파의 이해 또는 사익을 앞세워 수많은 민생법안도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3적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 국회’였다. 나라 살림을 감시해야 하는 임무는 뒷전이고 포퓰리즘 예산 배정과 지역구 사업 챙기기에 혈안이 됐다.

 4적은 꼼수 정치다. ‘국회의원 300명’(안)을 온갖 ‘꼼수’를 총동원해 통과시킴으로써 국회의 구조조정은 민심을 배신했다. 5적은 ‘우물 안 개구리 정치’다.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 나서 뛰고 있지만 관련 법률 등 지연은 정치권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또 국회의원들이 ‘헌법기관’ 운운하지만 계파 보스의 생각만 좇는 패거리정치도 문제였다. 18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국가와 민족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자기진단이 나오면 권력의 곁불을 걷어차야 하는데도 다들 19대 국회를 향해 바둥거리는 모습이다. 과연 유권자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19대 국회가 18대의 재판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선량(選良)이 어렵다면 범죄자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최악(最惡) 정치인을 배제하고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오적’의 끝인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하며 꺼꾸러지는 지경까지 가면 정치인도, 국민도 모두 불행해지기 때문에 이는 피해야 한다. 그래서 18대 국회의 여러 사안에 따른 낙천ㆍ낙선 리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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