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44 (토)
겨울숲의 묘미
겨울숲의 묘미
  • 배정경
  • 승인 2012.02.15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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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정 경함양군 문화해설사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사람들의 몸도 함께 움츠러들고, 바깥 일을 보는 이들은 두터운 점퍼와 목도리 등으로 중무장을 해야 했다. 서둘러 따스한 봄이 오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달력은 2월에 머무르고 있다. 사계절 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숲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함양에는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자리에 서서 지키고 있는 `상림`이라는 아름다운 숲이 있다. 연두 빛 새싹이 찬란하게 빛나는 봄과, 우거진 초록잎이 반짝이는 여름, 형형색색의 단풍과 낙엽이 밟히는 가을에는 관광객들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룬다.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은 숲은 겨울을 맞이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시끌벅적했던 숲은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고요해지고 겨울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은 사람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기도 한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숲의 풍경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눈에 촉촉해진 바닥은 미처 분해되지 않은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속에는 커다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알록달록 무당벌레, 팔랑팔랑 나비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도토리 깍정이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쓰러진 나무 둥지에는 구름버섯들이 따스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보자. 무성한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파란 하늘 사이로 멋진 모자이크가 나타난다. 숲의 터줏대감처럼 우뚝 솟은 굴참나무는 가지마저 굵직굵직하게 뻗어나가 남성미가 물씬 드러나고, 흰줄이 세로로 그어져 있는 서어나무는 자잘한 가지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섬세한 여성미가 드러난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들로 모처럼 바닥 깊숙이 들어온 햇살이 작은 돌멩이에 반사돼 빛나고 있다.

 시선을 가지 끝에 맞추면 지난 여름 내내 나무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겨울눈도 이내 시야에 들어온다. 서어나무는 뾰족한 비늘잎으로 겨울눈을 감싸고, 생강나무는 동그란 겨울눈 속에 노란 꽃잎을 품고 있다. 연약한 겨울눈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감태나무와 당단풍나무는 모성애를 발휘하고 있다. 아직도 말라버린 잎을 떨구지 못하고 차디찬 겨울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겨울눈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걷다보면 맑고 청아한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린다. 무얼 먹었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곤줄박이와 박새, 자기 영역이라고 야단이 난 직박구리가 가지 사이로 미처 제 몸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무성한 잎 속에 숨어있던 풍경을 이제야 볼 수 있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썩은 서어나무 줄기에서 `딱딱딱딱`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는 오색딱다구리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시력이 좋다면 동그랗게 구멍이 난 딱따구리의 둥지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르락 사그락 내리던 눈도 이내 촉촉한 겨울비로 변하며 추위도 조금 누그러 들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온 몸으로 겨울을 이겨내며 씩씩하게 서있는 나무들에게 눈을 맞춰보는 것을 어떨까? 정지한 듯 보이는 겨울숲이나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태해진 삶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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