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1:22 (금)
영원한 승자는 없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 곽숙철
  • 승인 2012.02.05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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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숙 철 CnE 혁신연구소장
 서커스에서 재주를 넘다가 이제는 은퇴해 외딴 농장에서 조련사와 함께 지내는 토니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있었다. 토니는 조련사가 특별히 만들어준 소형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낙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토니는 멀리 나가면 길을 잃을까 두려워 핸들을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꺾고 농장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딱히 다른 놀이거리가 없었기에 한 번 타기 시작하면 먼지 구름을 휘날리며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달렸다. 하루도 빼먹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저녁 때가 됐는데도 토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조련사가 걱정이 돼 나가보니 그동안 똑같은 경로를 달린 탓에 땅이 도랑처럼 움푹 패여 토니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세계 최대 비디오게임업체 닌텐도가 판매 부진으로 30년만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라는 뉴스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이다. 결국 `수로내기(canalization)`가 닌텐도의 발목을 잡고 말았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던 까닭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닌텐도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9년 초 온 나라가 닌텐도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천청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요즘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런 게임기를 못 만드나?" 라고 말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이후 언론에서는 닌텐도가 어떤 회사인지, 닌텐도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일 기사를 쏟아냈고, 네티즌 사이에서는 `명텐도`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만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일본 기업 대부분이 적자를 기록하던 2008년 닌텐도는 매출 1조8천386억 엔과 영업이익 5천552억 엔이라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으며 `잘나가는` 구글과 애플을 제치고 당시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기업`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랬던 닌텐도가 지난 2011년 회계연도에 650억 엔(약 9천4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앞서 얘기한 `수로내기`를 그 이유로 꼽고 싶다.

 사람은 한 번 어떤 방식으로 성공하면 그 방식을 언제까지나 고집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로내기`라고 한다. 동기와 동기를 만족하는 수단이 경험상으로 한 번 연결되면 저절로 수로가 파이는 것처럼 재삼 재사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메커니즘이다. 사람이 수로내기에 빠지면 고정된 발상의 틀에 갇혀 좀처럼 다른 발상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수로내기는 기업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크게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대부분 그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을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만 고수하면서 변화를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기업에서의 수로내기이다. 일찍이 IBM이 위기에 빠진 것도, 얼마 전 코닥이 파산 보호 신청을 한 것도 바로 이 수로내기 때문이었으며 닌텐도도 마찬가지다.

 1889년 설립된 닌텐도는 화투로 시작해 트럼프와 다양한 장난감을 만들던 회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제조업체에 불과했던 닌텐도가 변신에 성공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 시기였다. 닌텐도는 미국 비디오게임 시장 진출을 결정하고 과감한 투자로 1983년 첫 게임기 `패미컴`을 출시, 게임업체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사람들이 지나치게 어려운 게임을 싫어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모든 연령층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기 `닌텐도 DS`를 개발하면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지금 닌텐도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닌텐도 DS`의 성공에 도취돼 `수로내기`에 빠진 것이다.

 지금의 변화는 그 속도와 차원, 파괴적 강도와 예측 불가능성에 있어 과거의 변화와는 확연히 다르며 매우 위협적이다. 부지불식간에 덮친 거센 변화의 쓰나미에 쓸려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성공의 마천루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재임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어떤 기업이든 현재의 영광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극단적인 경우 1년 안에 우리도 망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마이크로소프트마저 `클라우드 컴퓨팅`의 등장으로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승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어떤 기업이든 한 번의 성공에 자만하거나 과거의 성공 경험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영원한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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