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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펭귄은 또 다른 '사람'이더라"
"황제펭귄은 또 다른 '사람'이더라"
  • 경남매일
  • 승인 2012.01.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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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남극의 눈물' 김진만·김재영 PD

"황제펭귄은 힘들어서 애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랬던 PD는 남극에 1년 가까이 머물며 황제펭귄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을 피해 모두가 남극을 떠나는 겨울 MBC 자연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제작진은 황제펭귄과 함께 겨울을 버텼고 황제펭귄의 삶을 영상에 담는 데 성공했다.

남극을 나와 9개월 만에 초록색 나무를 보고 감명받았다는 이들의 말이 고초를 짐작게 했다.

최근 여의도 MBC 본사에서 최종 편집에 여념이 없는 김진만 PD와 김재영 PD를 만났다.

60분 분량 테이프 1천500개를 5부작으로 편집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에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이었지만 황제펭귄이나 혹등고래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기운차게 말을 이어갔다.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을 잇는 '남극의 눈물'은 처음부터 '눈물' 시리즈로 기획된 작품은 아니었다.

김진만 PD가 2007년 다른 프로그램 촬영차 남극 세종기지를 다녀온 후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김재영 PD가 합류했다.

그러나 황제펭귄에 먼저 욕심을 낸 것은 김재영 PD였다.

"조사해보니 황제펭귄에는 형언할 수 있는 신비함이 있었어요. 생존 자체가 불가사의한 존재에요. 남극의 겨울을 견딘다는 건 대단한 거죠. 그래서 찍었으면 좋겠다고 가볍게 얘기했는데…."

김재영 PD의 제안은 받아들여졌지만 둘째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찍기 어려워서 일부러 황제펭귄을 숨겨놨다"던 김진만 PD에게 공이 넘어갔다.

김진만 PD는 "촬영이 오케이된 날 혼란에 빠졌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재영 PD는 해양팀을 맡아 남극해로 갔고 김진만 PD는 호주 모슨기지 대원으로 송인혁 촬영감독, 조연출 1명과 함께 남극대륙에 입성했다.

배를 타고 오갈 수 있던 해양팀과 달리 대륙팀은 꼼짝없이 남극에 300일간 머물러야 했다. 해가 뜨지 않는 흑야를 한 달 가까이 버티며 카메라의 오일도 얼려버리는 혹한과 싸웠다.

육체적인 고생도 많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도 컸다. 극단적인 우울증이 찾아와 같이 간 팀원끼리 '얼굴을 보기 싫을 정도'였단다.

'아마존의 눈물'을 찍은 김진만 PD가 주저 없이 아마존보다 남극을 더 힘든 곳으로 꼽는 이유도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다.

황제펭귄은 그들에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김진만 PD는 "정말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었다"며 "사람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아 호의적이었고 생긴 것도 너무 예쁘다. 냄새도 안 난다"며 황제펭귄에 푹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황제펭귄의 알이 부화하는 순간을 꼽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7월 중순 햇살 좋은 날에 알껍질이 빠드득 깨지면서 새끼가 삐약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눈물날 뻔했다"며 "'아 남극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김재영 PD는 60t 요트를 타고 혹등고래를 쫓았다.

고래 서식지가 워낙 광범위해 촬영이 쉽지 않았지만 촬영팀은 일주일 만에 혹등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장엄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김재영 PD는 "그 넓은 바다에서 고래가 언제 어디서 뛸지 어떻게 알았겠나"라며 "촬영감독의 감으로 찍은 장면인데 그때 정말 우리 촬영에 길조가 있나 보다란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남극 촬영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했지만 두 PD는 스스로 "제대로 자연 다큐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김재영 PD는 'PD수첩'에서 '도가니' 사건을 세상에 알린 '사건사고 담당 PD'였고 김진만 PD는 아마존과 남극까지 다녀왔지만 스스로 '도시지향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사람 이야기'를 좋아했고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자연에 접근했다.

김재영 PD는 "생태를 기록해 편집을 통해 이야기로 만든다. 현장에서 절대로 '큐' 사인을 줄 수는 없다"며 "관찰자지만 마음은 같은 공간에 사는 하나의 존재로서 그들의 입장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김진만 PD는 "'아마존의 눈물'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남극의 눈물'은 남극해와 동물들이 주인공"이라고 했다.

"남극이 아마존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얼음대륙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난 생태계의 보고였고 황제펭귄도 또 다른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철학적으로 거창하게 가고 싶지는 않아요. 있는 현상들을 풀어주면서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멋있는 풍경보다 그 속의 이야기들에 집중했습니다.(김진만)"

이들이 말하는 '눈물' 시리즈의 중심도 이야기다. '눈물'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아쉬움은 없었을까.

"후회는 없어요. 더 이상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한국기지가 있었다면 좀 더 악조건 속에서도 촬영을 강행했을 겁니다. 풍속 100km 이상의 블리자드(눈폭풍)가 불면 호주기지의 제지로 촬영을 아예 못 나갔기 때문에 펭귄들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요. 옆에서 좀 더 가까이 오랫동안 지켜보지 못했다는 게 아쉽죠.(김진만)"

김재영 PD는 "BBC에 비하면 턱없는 예산을 갖고 나름의 시각과 이야기를 전하는 게 전략이었고 성공했다고 본다"며 "남극의 생태를 성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로 담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담고 싶었던 것은 남극의 생태만은 아니었다.

"인간이 조금씩 남극에 들어가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어요. 알 수 없는 이유로 조류 인플루엔자가 돈다든지 쥐들이 이상번식하는 징후를 볼 수 있었어요. 소수의 인간이 들어갔음에도 남극 생태계에 이런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경고해 줄만 하다고 생각해요.(김재영)"

김진만 PD는 "남극은 인간이 들어갈 곳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단순히 '펭귄 귀엽다, 고래 대단하다'가 아니라 남극의 환경 문제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프롤로그 방송에서는 욱일승천기 등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재영 PD는 "일본의 남극 진출 의미를 상징하는 맥락에서 등장한 건데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이 있던 것 같다"며 "세심하게 고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5부작으로 구성된 '남극의 눈물'은 13일 밤 11시 2부 '바다의 노래를 들어라'를 방송한다. 여름에는 극장 개봉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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