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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만들었다는 게 뿌듯하다"
"'뿌리깊은 나무' 만들었다는 게 뿌듯하다"
  • 경남매일
  • 승인 2011.12.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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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유 PD "한글의 과학적 원리·우수함 전달하고팠다"
한마디로 빼어난 작품이다. 대본, 연기, 영상, 연출 모두 'A+'감이라 할 만하다.

   사실 TV 드라마에서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제작비도 더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덕분에 시청자의 눈과 귀, 마음은 흡족했다.

   영화 같은 완성도와 깊이, 철학, 치밀함과 세밀함을 과시한 SBS '뿌리깊은 나무'가 겨울 한파 속 안방극장을 따뜻하게 덥히며 지난 22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 방송 직후 작품을 연출한 장태유(39) PD와 전화로 만났다.

   그는 "뿌듯하다"고 말했다. 안 그러면 외려 이상할 것이다. 그 한마디가 이심전심이었다.

   하지만 불과 1시간여 전 마지막회 방송 시작 직후까지 그는 좌불안석이었다. 방송 직전까지 편집했고 이날 후반부 영상이 담긴 테이프는 방송이 시작된 후에야 목동 SBS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방송사고 날 뻔했다"는 그는 "사실 마지막회를 제시간에 찍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어마어마한 대본을 받는 순간 '야 이거 방송사고 나는구나' 싶었는데 무사히 끝나 정말 다행"이라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원 없이 했나.

   ▲여러 가지 기획한 걸 표현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추리극 형식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는데 연쇄살인의 고리를 계속 맞추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감이 있어 도중에 그만뒀다. 또 제작비와 시간의 문제로 어느 순간 와이어 액션이 필요한 출상술(땅을 박차고 위로 솟구치는 무술)도 포기했다.(웃음) 반면 크게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정치 색깔을 띤 드라마가 됐다. 정치철학, 위정자의 생각 등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그릴 생각은 없었다. 재미없지 않나. 한데 생각보다 호응을 받으면서 작가도 신나게 썼다. 원래 의도는 성취한 것 같아 기쁘다. 작가나 연출자가 자기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이번에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한글의 과학적 원리, 우수함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작품을 했다. 작년에 미국 연수를 다녀왔는데 한국인들은 돈만 있으면 미국에 가고 싶어하고 영어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모든 게 영어 중심으로 돌아가고 학원강사가 재벌이 된다. 이런 현실이 참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글을 얘기할 수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옳다구나 싶었다. 한글을 너무 파고들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우려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그리고 싶었다. 시청자의 10%라도 한글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변화를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글을 반대한 정기준(윤제문 분)과 사대부는 그 당시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주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대변한다. 그런데 그게 요즘 우리가 미국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다. 그 당시 한자를 섞어가며 말을 해야 '있어' 보인 것처럼 요즘에는 영어를 섞어가며 말해야 세련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분위기에서 한글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한글은 위대한 글자이고 세종대왕은 정말 용기 있는 파격적인 왕이다. 인간으로서 너무나 존경스럽다.

--영상, 연출이 빼어났다.

   ▲무척 신경 썼다. 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스태프 구성, 미술, 고증 등을 하는 단계인데 최고의 스태프를 꾸렸고 미술과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카메라도 최신형 제품을 구비해 심도와 색감에서 이전 드라마와는 다른 영상을 구현했다. 액션은 이 드라마 콘셉트 중 하나라 중점을 뒀다. 장혁 씨 추천으로 '추노' 무술팀과 작업했는데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다. 영화 '300' 등 여러 가지 액션을 혼합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액션을 만들었다. 개인으로서는 프롤로그가 가장 멋지게 나온 것 같고, 초반에 태종(백윤식)과 이도(송중기)가 숲에서 입씨름하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마지막회를 찍을 때 힘들었을 것 같은데.

   ▲대본을 받는 순간 기절했다.(웃음) 세종과 정기준이 정륜암에서 끝장 토론을 펼치는 장면이 대본으로 50페이지 분량이었는데 반포식 장면은 80페이지였다. 그런데 시간은 없고 낮에밖에 못 찍으니 죽겠더라. 소이(신세경)가 동굴에서 죽는 장면도 오전 9시에 시작해 자정에야 끝을 낼 수 있었다. 사실 반포식은 개파이(김성현)로 아수라장이 된 식장에 백성과 신하가 마구 섞이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들이 한 데 어울려 한글을 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 복이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배우가 최고 1등 공신이다. 군소리 하나 없이 모두가 힘들어도 열심히 했다. 사실 '열심히'라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노력했다. 한석규 씨는 대본을 항상 연구하면서 내가 짠 콘티를 바꾸게 했다. 예컨대 광평대군(서준영)이 죽은 신에서도 대본에는 광평 시신을 태운 가마 앞으로 세종이 와서 운다고 돼 있었는데 한석규 씨는 울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죽은 광평을 가마에서 꺼내 그의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연기를 펼쳤다. 원숭이들이 동료의 죽음을 그렇게 확인한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눈물이 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한석규 씨가 연구해서 반영된 장면이 매회 한두 신은 꼭 있었다. 장혁 씨는 대본을 20번 이상 읽고 오고 무술팀과 끊임없이 토론하며 액션을 만들었다. 민초의 삶을 표현하는 데 아이디어를 많이 냈고 무엇보다 채윤의 복잡한 감정 변화를 그리는 게 힘들었을 텐데 잘해줬다. 신세경 씨는 20대 초반 신인 배우임에도 상당히 성숙한 느낌을 보여줬다. 분량이 좀 적어서 아쉬웠지만 마지막에 죽는 장면에서 모든 것을 상쇄했을 듯하다. 죽는 연기를 아주 잘했다.

--'바람의 화원'에 이어 또 팩션사극을 해서 성공했다.

   ▲모든 게 허구인 이야기보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스토리가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꼭 사극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극에도 팩션을 가미할 수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을 녹이는 재미가 크다.

   --팩션사극은 왜곡의 위험이 항상 따른다.

   ▲우리는 족보가 없는 백성과 여자,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문제없었다.(웃음) 왕조 사극은 왕을 어떻게 다뤄도 고소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왕족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로 고소하지 않는다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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