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태어났을 때는 현 망경동 섭천이라는 곳에서 소가 도축돼 각 지역 또는 시장으로 공급됐다. 그 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망경동 지역이 주거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도축장이 현 이현동 숯골, 지금의 덕산아파트가 지어진 자리로 옮겨졌다.
이현동이 주거지역으로 변하면서 도축장은 1982년 상평공단 내로 이주하게 된다. (주)대화라는 회사명으로 상평공단으로 옮겨진 당시에는 도축장의 허가사항인 5천㎡에서 면적이 다소 (18㎡) 모자랐다. 그러나 이웃 공장의 임대 배려로 2006년까지는 도축장의 기능을 제대로 다하면서 최신 설비를 설치하는 등 현대식으로 공장설립도 끝마쳤다. 그러나 (주)대화는 최신식 설비 투자에 따른 경영상의 적자로 2007년 3월 (주)아시아씨앤아이에게 경매로 넘어간다.
그 당시 (주)아시아씨앤아이는 예전에 이웃으로부터 임대했던 18㎡의 부지를 확보치 못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소를 도축하지 못하고 규정상 돼지만을 도축했다. 이로 인해 적자는 늘어났고 금융이자는 물론 종사자들의 급료마저 체불하는 지경에 처해졌다.
고로 진주의 도축산업은 사장위기에 놓였고 시는 세금 및 각종 공과금을 거둬 들이지 못해 손해고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육농가, 식육점, 운송업자, 임직원 등 1천여 명의 축산농가가 시름에 잠겨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현 사업주인 (주)아시아씨앤아이가 더 이상 투자의욕을 상실, 도축장이 경매에 부쳐져 이 달 말 1차 경매가 예정돼 있지만 경매가가 66억 7천만 원에 달해 투자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때 축협, 축산기업조합, 축산진흥연구소 등은 진주 도축산업의 세밀한 경영분석으로 투자자를 영입, 진주의 도축산업 정상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도축산업의 쇠퇴화는 사육농가와 직결된다. 그러다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19회를 개최해 온 진주소싸움의 명성도 1923년 소를 도축하던 사람들이 신분해방운동 또는 인권운동으로 성화시킨 진주의 형평사운동 진주정신도 퇴색되는 것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