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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45>
꿈꾸는 산동네 <45>
  • 경남매일
  • 승인 2011.08.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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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화 트랜드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완성반으로 돌아온 말자

공장뒤쪽 백양산이 며칠 전부터 진초록 옷으로 단장을 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말자와 주변을 산책하면서 바라본 산이 하루하루 바뀌어 간다 싶더니 온통 푸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산도 푸르고 동네에 뛰어놀던 아이들도 씩씩하게 활보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이 왔다.

말자는 며칠 전부터 다시 완성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처음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민복이 오후 5시면 학교에 가야 하는 관계로 일손이 딸리는 완성반에 말자를 재배치했다.

회사와 학교를 병행하는 민복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적응해 갔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아 우등생이었으며 회사에서는 주어진 시간안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물량을 뚝딱 만들어내는 일꾼이었다. 말자가 완성반에 배치 받자마자 두 사람은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오히려 전보다 더 끈적끈적 해졌다.

“허말자 넌 좋겠어. 동생처럼 따라주는 동료가 있어서.”

“반장님 동료끼리 잘 지내는 일은 차라리 회사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권장해야 되는 거 아입니꺼?”

말자가 잘 안 쓰던 경어까지 쓰며 말한다.

“어쭈 제법인데.”

“순영반장 내가 다시 이쪽으로 왔는데 환영식 어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민복이 수업이 없는 토요일로 잡는 게 어떻겠노? 아예 2차는 단체로 고고장 같은데 가서 스트레스도 확 풀고.”

순영도 그렇게 나오는 말자가 밉지 않았다. 이전의 두 사람은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 동갑내기에다 경력에서 앞선 말자와 경력에서는 처지지만 고등학교까지 나온 순영은 매번 티격댔다. 그러다 반장 건으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아예 비웃기라도 하듯 완전 달라진 모습으로 이전의 부서로 돌아온 것이다. 어느 순간 유들유들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가진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기까지 말자로선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비교적 현실체제 순응자에 속하는 말자는 삐딱선을 탔다가 손해만 보는 동료들을 주변에서 많이 지켜봤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철저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언니 잘 했어.”

반장이 돌아가자 민복이 파이팅까지 하는 손짓을 해보이며 말자를 추켜세웠다.

“아까 순영반장이 언니한테 비꼬듯 말을 건넸을 때 나는 속으로 언니가 거기에 말려들어 또다시 티격대면 우짜노 하고 얼마나 걱정되었는지 몰라.”

“민복아 니는 회사다 학교다 해서 양쪽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 언니가 되어 갖고 하나라도 제대로 소화 못 해내면 안되지 호호.”

그래서 두 사람은 기분이 더욱 상승되어 호호호 낄낄대며 한참을 웃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시샘을 낼 정도였다. 완성반과 재단반을 번갈아가며 경혐을 한 말자로선 양 분야에 무엇이 당장 시급한지 파악이 가능한 인재로 회사엔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직 그녀에게 반장을 맡길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고 향후에 그런 자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맡길 것이라고 장담할 입장이 아니었다. 상부에서 지시하는 단순한 업무는 회사내에서 말자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행의 흐름에 따라 그 때 그 때 민감하게 변하는 새로운 패션 형태에서도 그녀가 잘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트랜드라 명명되는 새로운 문화와 환경의 변화는 아무래도 좀 더 배운 사람이 쉽게 적응하리라고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했다. 수출시장을 주도 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이상한 징후가 발견된다는 관계자의 보고가 있었다. 유행의 흐름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 욕구는 새로운 형태와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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