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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44>
꿈꾸는 산동네 <44>
  • 경남매일
  • 승인 2011.08.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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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화 첫 나들이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부산으로 이사온 후 가족의 첫 나들이

“저기 뭐꼬? 코끼리 아이가, 허허 거 참 그 놈 덩치가 엄청나네.”

동출이 동물원의 축사에서 어슬렁거리는 코끼리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민복은 이전에 친구와 함께 다녀간 동물원에 오늘은 안내원이 되어 가족을 이끌고 나타났다. 가족 봄나들이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오늘에야 겨우 기회를 잡았다. 민복의 가족이 살고 있는 산동네 마을 어귀에도 노란 개나리가 탐스럽게 피어나던 4월의 어느 일요일 이었다. 이날을 위해 동출은 하루 휴가를 내었다. 부산으로 이사를 오고 처음으로 맞은 가족 나들이였다. 그동안 사는게 어려워 나들이다운 나들이를 한번도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터였다. 비록 막노동 꾼으로 남들이 보기엔 늦은 나이에 변변한 기술도 없이 데모도(보조, 뒤치다꺼리) 역할이나 하고 있지만 그도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이었다. 막 노동꾼 6개월 만에 아직 기술자로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성실성을 인정받아 계속된 일자리를 보장 받았다. 물론 보조생활을 하는 틈틈이 종복으로부터 시멘트 바르는 기술을 전수받아 내심 정식으로 기술자로 인정 받을 날을 벼르고 있었다.

한번은 종복이 잠시 쉬는 틈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나난 십장이 그 장면을 목도한 후 시멘트 바른 곳을 세세히 살피고는 의미있는 웃음을 짓고 갔다. 종복도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십장에게 동출이를 기술자로 부려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추천해오고 있었다.

보조에서 기술자로 바뀌는 것은 신분의 상승을 의미했다. 비록 공사장 막노동꾼의 세계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났다. 우선 매일매일 계산하는 지급 수당에서 기술자는 보조보다 세 배나 더 받았다. 하루하루 벌어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 막노동꾼 세계에서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었다. 또한 기술자는 공사장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공사장 일이 한창 바쁠 때는 시공사 측에서 모셔가지 못해 안달이다.

그럼에도 안정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체계적이지 못한 노동시장에 있었다. 가끔씩 건설 불경기도 영향을 미쳤다. 가끔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와 건설현장의 특성상 새벽 7시부터 시작하는 고된 일로 젊은 세대는 점점 기피하는 업종으로 전락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즈음 곳곳에 불어닥친 아파트 건설붐이 새로운 건설경기의 호조로 이어졌다. 많은 현장에서 기술자의 수요가 태부족하여 동출이 인정받을 날도 가까워오고 있었다.

“당신도 동물원엔 처음이지?”

동출이 옆에서 원숭이에게 과일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있는 양례에게 물었다.

“몇년 전 동네 여자들 계모임을 통해 다녀왔다 아입니꺼? 그 땐 경기도 용인이라던가 어디쯤 있는 동물원이라카던데 오히려 여개보다 훨씬 규모가 컸지예. 서울에 있는 덕수궁이라는 임금님이 살았던 대궐도 구경하고 호호.”

“어 그랬던가? 내가 당신보다 훨 촌놈이네 거참 허허.”

“저도 처음 인데예.”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민석이 눈치없이 끼어 들었다.

“녀석도. 니야 아직 어린데 너거 아부지 하고 비교 할라꼬. 호호.”

“아이다. 민석아 니하고 내는 동물원을 처음으로 구경한 동기니라 알았제 하하하.”

옆에 서 있던 민복도 그 말에 박수를 쳐대며 웃었다. 온 가족이 맘껏 웃음꽃을 피운 하루였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나 도시로 이사 온 후를 통틀어 오늘처럼 기꺼운 적이 없는 동출은 한없이 안겨오는 행복에 가슴이 벅찼다. 이런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그런데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자그만 불안감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막연한 불씨가 자라나고 있었다.

“자 다음은 식물원입니다.”

동물원 구경이 어느 새 끝났다 싶자 민복이 안내원의 흉내를 내며 다음 코스로 이끌었다. 옆에서 보기엔 아직 서툴렀지만 본인은 능숙한 안내원이라도 되는양 활기찬 몸짓으로 가족을 이끌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동출은 배꼽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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