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1:43 (토)
똥꽃과 지우개
똥꽃과 지우개
  • 류한열
  • 승인 2011.08.08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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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사회부장
 정우성ㆍ손예진 주연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사랑스런 젊은 부인이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슬픈 내용이다. “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 그대의 머리 속에선 다 지워져도 가슴 속엔 영원하기를….” 독백으로 들리는 정우성의 내레이션은 긴 여운을 남긴다. 남편 정우성을 바라보던 손예진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누구세요?” 라고 물어본다. 그녀는 사랑했으나 기억나지 않는 남편의 품에 기대어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던진다. 멍하면서 창백한 표정으로 서글픈 표정을 한 정우성은 그녀를 감싸 안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시골에 집을 개량해 모시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 소설 ‘똥꽃’.

 어머니는 20년 가까이 지내던 아파트를 벗어나 아들의 산골짜기 허름한 집에서 사시사철 계절을 몸으로 느끼며 지낸다. 그리고 자연과 무한한 대화를 하며 서서히 치매가 치유돼 가는 기적 같은 내용이다.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 자연이다.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아들은 생각한다. 그 아들의 숭고하기까지한 노력이 어머니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가족 중 치매를 앓으면 본인이 겪는 아픔보다 옆에서 수발하는 가족이 더 고통을 겪는다.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성 치매가 늘어나고 있다. 치매를 앓는 가족이 벽에다 ‘똥꽃’을 그리면 그것을 받아낼 가족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가족은 똥꽃을 피우는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여생을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남은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긴다. 기억이 지워지면 그나마 가족 사랑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을 것인데 가족이 돌아선다. 그들은 더 고립돼 자신의 작아지는 세상을 닫아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NSCR, 단장 허대석)과 노인성치매 임상연구센터(CRCD, 센터장 최성혜)는 오는 20일과 9월 3일 두차례에 걸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본관 대회의실에서 ‘노인성 치매 대책’ 토론회를 연다.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치매관리 대책 수립을 위한 토론의 장이다. 이번 토론회는 치매 관리를 위해 필요한 의학적 근거, 현재까지 수립된 연구결과, 부족한 근거 확보 방법 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특히 1차 토론회에서는 ‘치매의 역학에 대한 의학적 근거와 부족한 근거의 구축 방안(한창수 고대안산병원 정신과)’, ‘치매 예방에 대한 의학적 근거와 부족한 근거의 구축(이윤환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진단 및 진행의 경과를 반영하는 생물표지자 및 대리표지자의 근거와 부족한 근거의 구축방안(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경도인지장애의 치료에 대한 근거와 부족한 근거의 구축방안(홍창형 아주대병원 정신과)’ 등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46만 9천여 명으로 65세 이상 전체 인구의 약 8.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점차 늘어 오는 2030년에는 치매노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비율도 9.6%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치매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다. 치매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가족들도 엄청 늘어날 것이다.

 정우성은 머리 속에 기억이 지워지는 아내를 찾아 무한한 가족의 사랑으로 회복의 단초를 제공한다. 똥꽃의 아들은 어머니를 일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무한정한 자연의 품에 어머니를 모시고 마음껏 자연과 살도록 자신을 희생한다. 결국은 우리의 기억을 앗아가는 치매는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진리를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을 뿜어낼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별로 없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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