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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12>
꿈꾸는 산동네 <12>
  • 경남매일
  • 승인 2011.07.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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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흔들리는 농촌 <1>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민석이가 태어난 고향은 벼농사와 양파를 주로 재배하는 경남 창녕의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고향마을을 기준으로 살펴볼 것 같으면 70여 호가 오순도순 마을을 형성한 뒤쪽으로 우뚝 솟은 거봉산이 감싸고 있다. 마을 앞쪽으론 어려운 형편에 대부분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힘들게 지은 곡식을 추곡 수매가로 합동으로 내어 놓아야 하지만 가끔 잔칫날이나 제사 때는 쌀밥 정도는 제공해 줄 논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그 앞으로 앞산이 야트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앞산은 말이 산이지 대개가 옥수수나 채소를 일구어내는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거봉산 뒤편으론 사방 이십 리 지역에선 알아주는 영축산이 산세를 뽐내며 우뚝 솟아 있다.

민석이네는 농사만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칠십여 호 주민들 중에서 논 열 댓 마지기를 부치는 중농 정도에 속했다. 그 중에 다섯 마지기는 소작이었다. 말이 좋아 중농이지 척박한 논 마지기에서 나오는 소출로는 학교 공납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농가가 대부분인 진모리 마을에서 중간쯤 정도로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간쯤 되다보니 진모리 마을에서는 그래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을 체면치레는 유지할 정도로 살아왔다. 하지만 민석의 아버지 동출은 추곡수매가로 공납금을 겨우 맞추고 나면 여유가 없어 밤늦도록 늘 가마니틀에 매달리고 있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때는 70년대 중반으로 산업화가 막 불붙기 시작했으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오로지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도시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던 시절이었다.

진모리는 민석이가 초등학교 1,2학년 쯤인 어린 시절엔 마을의 가구 호수가 100호를 넘어설 만큼 제법 큰 동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산업화의 바람이 농촌으로도 밀고 들어와 마을전체가 휩쓸리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열풍은 정말 드셌는데 처음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는 누나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로 나갔다 하면 꾀죄죄한 땟국을 벗고 곱게 단장하여 고향에 등장해서는 시골에 살던 부모님을 도시로 나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농사만 짓던 부모들이 처음부터 시골을 등졌던 건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먼저 설득을 당한 한 둘이 먼저 고향을 뜨고 그들에게 촌 보다는 살만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발주자들이 점차 합류하기 시작했다. 나라에서는 수출규모를 늘리기 위해선 많은 근로자들이 필요했다. 낮은 임금으로 많은 근로자를 산업역군으로 붙잡아 두기 위해선 쥐어짜는 저물가가 급선무였고 최고 통제가 수월한 분야가 추곡 수매가 였다. 아직 가난이 숙명처럼 달라붙었던 시절이었다. 배고픔만 면한다 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사를 지어봤자 학비도 감당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은 너나나나 도시로 나가면 막연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등지고 떠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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