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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11>
꿈꾸는 산동네 <11>
  • 경남매일
  • 승인 2011.07.0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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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출향(出鄕)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그로부터 2년이 지난 76년 봄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어른들이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야. 민석아. 너도 빠트린 물건이 없는지 꼼꼼히 챙겨보거라.”

어머니는 짐을 싸면서 걱정이 되는지 민석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늘여 놓았다.

민석은 짐꾼들이 짐을 싸는 동안 집 뒤뜰로 가 토끼집을 살폈다. 며칠 전에 어미토끼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아 놓았는데 그 새 한 마리가 죽고 살아남은 새끼들이 꼬물꼬물 어미의 젖을 빨고 있었다. 이사 가기로 결정된 며칠 전부터 어머니를 졸라 어디다 토끼를 맡길지 걱정했던 민석이다.

“데리고 가서 키우면 우째 안되겄나, 엄마 제발.”

민석이 몇 번이나 졸랐건만 어머니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야가 도시에 그것도 달동네에다 세를 얻어가는 주제에 토끼를 키울 공간이 어디에 있다고.”

나중엔 막무가내로 조르다시피 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꿈쩍도 않을 태세다. 말은 바른 말이지만 처음부터 토끼에게 정이 들었던 건 아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시간이 날 때면 토끼풀을 뜯어다 토끼장에 넣어준 민석이다. 그러다 점점 배가 불러오던 토끼가 새끼를 낳았고 신기하여 자주 들락 거렸는데 막 정이 들 무렵 그만 새끼 한 마리가 죽고 말았다.

“엄마 토끼 새끼 한 마리가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꿈쩍도 안하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어미 토끼의 눈망울이 슬퍼서 더욱 붉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민석은 어머니가 죽은 토끼새끼를 집게로 끄집어내어 소쿠리에 담아 땅에 파묻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콧잔등이 찡해진다 싶었는데 눈꺼풀로 작은 물기가 맺혀졌다. 민석은 쑥스러워 얼른 소매로 눈가를 쓱 문질렀다.

민석은 며칠 전에 있었던 생각을 떠올리며 토끼집 안을 다시 살폈다. 조금 있으려니 오촌 당숙이 당도했다. 어머니가 이사소식을 알리며 토끼를 부탁한 모양이었다.

“형수, 아이구마 시간에 맞춰 온다는 기 많이 늦었습니더.”

“서방님 오셨습니꺼? 안 그래도 민석이가 토끼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어예. 호호.”

“ 아재 오셨습니꺼? 토끼 잘 부탁 합니더.”

“그래 민석아. 여부가 있겄나? 하하하.”

당숙이 사람 좋은 웃음을 웃어 제쳤다. 그러다 트럭위의 짐을 갈무리 하고 있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동민이 동생 왔나?”

“형님. 이사 가고 나면 섭섭해서 우짭니꺼? 그렇지 않아도 가까운 친척들이 하나 둘 고향을 등져 섭섭했는데 인자는 형님마저….”

“이렇게 정든 고향을 누구라고 떠나고 싶어서 떠나겠나? 매년 농사만 지었다 시장에 내놓을 때쯤이면 나라에서 수매가를 꽉 틀어쥐어 짜는 통에 아 공부라도 제대로 시키겄나?”

민석이 집 뒤뜰로 나가 뒤뚱거리며 토끼집을 당숙아재 한테 옮겨왔다. 이삿짐을 싸던 인부들도 짐이 마무리 되었는지 마당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석이 토끼집을 당숙에게 맡기고 뒤뜰로 가 혹시 빠뜨린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정들었다 이제는 쓸모없게 된 많은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다니고 있다. 담 너머로 멀리 영축산이 바라보였다. 어떤 곳은 벌써 단풍이 들었는지 울긋불긋 했다.

민석은 뒤뜰에 자라는 제법 큰 편백나무 아래에 서서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을 즐기곤 했는데 오늘따라 만감이 교차되는 기분이다.

“이제 이렇게 이곳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오늘이 끝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금세 콧잔등이 시큰 거렸다. 하지만 도시로 가서 새 교복을 멋지게 입고 씩씩하게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애써 서글픈 생각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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