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1:27 (금)
꿈꾸는 산동네 <9>
꿈꾸는 산동네 <9>
  • 경남매일
  • 승인 2011.06.2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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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악몽 <4>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우리 둘이 잘 왔지?”

“그래도 엄마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 걔 데려와도 좋을 뻔 했는데. 이런 데도 있다는 것도 보여 주고. 엄마가 이렇게 여유 있는 문화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담에 고향에서 걔가 엄마 자랑하면 주가도 오를 거고. 그리고 걔 자세히 보니 심성이 무던해 보이고 괜찮아 보이던데. 아깐 별 생각 없이 괜히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기집애 난 그것도 모르고 괜히 니 눈치 봤잖아. 하긴 여기 못 온 것도 지 복이지 우짜겠노? 지 복이 고것밖에 안 되는 거. 참 모처럼 나온 김에 영화도 보고 천천히 들어갈까?”

“아빠가 빨리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얘 말마. 니 아빠 요즘 엄청 바빠. 거의 매일 술이고 보통 땐 얼굴 보기도 힘들다 얘 호호.”

영화를 보고 돌아온 병철이 가장 먼저 들어와 TV를 보다 자기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함흥차사 돌아올 기미가 없다. 밤 9시가 넘어서자 민복은 급작스레 식곤증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나중엔 아예 드러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하지만 민복이 잠에서 깬 건 가슴이 답답해서 였다. 한동안 잠에 빠져 있었는데 인기척이 있고 자신이 자는 소파 옆에 비스듬히 앉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감아 버렸다. 도저히 눈을 뜰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동호백부가 자신의 가슴을 더듬으며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벌떡 일어나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대담해진 동호는 이제는 단추까지 풀어헤쳐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민복은 마치 몇 시간이나 되는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다음 날 민복은 아침 일찍 집을 나와 공장일대를 꼼꼼히 살피며 돌아 다녔다. 요즘은 수출경기가 호황이라더니 일요일인데도 공장을 가동 중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문을 닫았다. 모집공고문이 붙은 회사위주로 돌아다녔지만 여자가 일할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을 닫은 곳은 경비실에 들러 모집여부만 확인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별성과가 없었다. 월요일날 모집을 확실히 할 회사를 재차 방문하기로 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니 병철만 TV에서 만화를 보고있다 민복이 들어서자 소파에 누워 시선만 잠시 향했다 다시 TV를 봤다.

“니는 누나가 밖에 갔다 왔는데도 인사도 안 할끼가?”

“쳇.”

“요런 꼬맹이 녀석이.”

“나 꼬맹이 아닌데 5학년이나 되었는데.”

민복은 그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은?”

“누나 서울로 올라간다고 데려주려 터미널 갔다가 저녁 먹고 온댔어.”

“그럼 밥은?”

“조금 전 자장면 시켜 먹었어. 엄마가 단골중국집에 미리 전화해 주고 갔어.”

병철은 그렇게 말한 뒤 귀찮다는 듯 TV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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