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28 (금)
꿈꾸는 산동네 <1>
꿈꾸는 산동네 <1>
  • 임상현
  • 승인 2011.06.19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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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양례의 불안한 행복(1)
▲ 그림 ㅣ 김언미
 양례는 건물주인 아줌마로부터 저녁에 한번 집에 들르라는 호출을 받았다. 오전 일찍부터 가게에 나타난 아줌마는 왠지 알듯 말듯 야릇한 미소만 지은 채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묻는 양례에게 끝까지 함구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한참 이른 시각부터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손님이 밀어닥치기 시작하여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쉴 틈이 생겼다.

 마침 동이엄마가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일을 도와줘 일은 한결 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혼자서 해결하던 때와는 달리 손님 치러 내기가 한결 쉬웠다.

 양례는 자신이 국수집을 맡고부터 몇 개월 사이에 저축도 제법 많이 하고 형편이 나아져 조만간에 민복에게 공장은 이제 그만두고 공부만 하라고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낮에는 공장에서 시달리고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민복이 였다. 동이엄마가 온 뒤로 부터 주말에는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매일 피곤에 절여 사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헌데 주인아줌마가 왜 나를 보자고 하지?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일이 잘 풀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시골에 살 때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농사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고 농한기에는 가마니틀에 앉아 가마니 짜는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가난은 항상 숙명처럼 자신을 따라다녔다. 부산에 이사를 와서도 남편이 어렵게 직장을 잡아 겨우 생계를 유지해가다 막 잡부를 벗어나 기술자로 돈을 좀 벌고 형편이 좀 나아지는 것 같자 마치 시샘이라도 하듯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신의 인생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인생이 설계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숙명론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에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변화를 놓고만 본다면 그동안 자신이 잘못 생각해 왔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민복도 대학생이 되고, 민석은 우등생이 되고, 특히나 민석은 가정 형편이나 여건이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병철을 훨씬 뛰어 넘었다니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그러다 며칠 전 동호의 아들인 병철이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경찰에서 이 사실을 학교로 통보해 와 병철이 한 달 간 근신에 처해졌다고 민석이 말했었다. 그런데 말미에 가선 지금은 같은 반인데 민석은 3등이고 병철은 과외를 받아가면서도 중간도 못되고 학교에서 온갖 문제는 혼자서 다 일으키는 문제아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오래 전 남편인 동출과 동네의 아는 언니였던 연숙 언니가 한 때 교제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출이 못 배우고 가난해서 연숙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과 동출이 결혼 후 금슬은 남달랐다. 자신이 알기에도 남편은 한번도 자신과의 결혼을 후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 적이 없었다. 양례는 마음 속으로 언젠가 동출이 자신과 결혼한 일이 훨씬 나았다고 보란듯이 말하게 될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만 되지 않았고 남편은 죽었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도 동출이 저세상으로 가던 그 순간 까지도 자신과의 결혼을 행복하게 여겼었다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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