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51 (금)
강요 당하는 사회
강요 당하는 사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2.28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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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의 고뇌를 다뤘던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자기와 결혼을 하자마자 곧바로 동경에 가 대학까지 마치고 온 지식인이다. 아내는 일본에 유학 간 남편과 떨어져 있는 긴 세월을 ‘남편만 돌아온다면…’ 생각으로 견뎌낸다. 남편이 돌아오면 부유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긴 세월 홀로 어려움을 참고 기다린 아내에게 돌아온 남편은 아내의 기대와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남편은 돈벌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에 있는 돈만 쓰고 어느 날 만취 상태에서 “술을 권하는 건 조선사회다”고 말한다. 주인공 남편이 술을 먹는 걸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 자기가 좋아서 먹는 술은 왜 남 탓으로 돌리는 지….

 타인에 의해 강요당하는 사회는 불편하다. 시대상황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1 회사원 김씨는 과잉 친절 사회에 사는 게 너무 짜증스럽다. 한창 업무에 집중하는 데 휴대폰이 울려 습관적으로 전화를 받으면 대출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화를 낼 수도 없고 해서 전화를 끊어버리지만 어떤 누구도 자신의 사생활을 허락 없이 방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화가 끝까지 난다. 주부 박 씨는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로 인터넷 설치를 요구하는 설명을 늘어놓으면 황당할 뿐 아니라 엄연한 개인 생활 침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2 주택에 살고 있는 전업 주부 김 씨는 매일 아침 대문에 붙어 있는 광고전단지를 떼는 게 일과다. 며칠을 그냥 두면 대문과 옆 벽이 너무 지저분해져 광고지를 붙이면 떼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대문 안에 놓여 있는 소책자 광고는 꼭 자장면을 주문해 먹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삶의 여유를 부리려 해도 매일 대문에 붙는 광고지나 현관의 문고리에 달려있는 책자들이 자신의 삶을 감시하는 기분이 들어 우울할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3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할 요량으로 동네 슈퍼마켓보다 시내 대형마트를 찾는 주부 박 씨. 그녀는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구매를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어 언짢다. 장을 보기 전에 이미 품목을 적어 왔지만 매장 코너마다 목소리를 높여 구매욕을 돋우는 바람에 더 많은 반찬거리를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식품코너를 갈 때마다 발걸음을 옮기기기 머쓱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조용한 가운데 쇼핑을 하기를 이미 포기했지만 코너마다 너무 친절하게 가격과 품목 설명으로 강권되어지는 게 싫다고 말한다.

 개인의 의사가 타인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알고 모르게 ‘권해지는 사회’는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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