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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한 토끼와 거북이
서로 사랑한 토끼와 거북이
  • 경남매일
  • 승인 2010.09.0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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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바꾸는 열린 마음 이웃 이해하며 사랑ㆍ희생 실천 서로 도우며 삶의 질 높여야"
▲ 박 경 수 의령군 생활체육회 회장

 

대사회 정보의 흐름속에서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일련의 여과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속도의 당위성과 창조적 여과라는 두 움직임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만이 정보소비국의 불안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사회 정보의 흐름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없는 생존은 위태롭게 된다.

 이제라도 모든 교육에서 가르치는 것에만 전력하지 말고 듣고, 보고, 느끼게 하는 교육활동이 우선되어야 하고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에게 다섯에서 셋을 빼도 둘이고, 둘을 만드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임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리고 미래는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숙명적으로 밟아만 가야하는 예정된 시간이 아니라, 예측 불허의 시간들일 것이니 오랜 인습이었던 운명론에 새로운 용기와 기회를 줄 예측 불허의 다윈적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는 기대 때문에 무한한 선택이 가능한 것이며 다양성의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장밋빛일 수도 있고 절망의 나락일 수도 있기에 생각과 노력에 따라 미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옛날 우리들이 어릴적에 들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재조명 해보고 다른 측면에서 이해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실로 거북이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토끼는 거북이를 몹시나 사랑하고 있었다 한다.

 특히나 느리기만한 거북이의 열등의식과 서로가 어울려 놀지 못하고 ‘왕따’ 당하고 있는 거북이가 안타까웠던 토끼는 거북이가 자신감을 갖고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어 애절한 마음으로 거북이에게 경주를 하자고 했다.

 토끼는 혹시나 하면서 천천히 뛰었지만 거북이는 보이질 않고 거북이가 포기하고 말 것 같아 나무 밑 그늘에서 자는 척 하면서 거북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거북이가 토끼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곁에 와서 깨워주고 함께 가자고 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북이는 토끼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기어가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결국 이후로 토끼에게는 ‘자신과 방심’이란 낙인이 찍히었고 거북이는 ‘근면과 성실’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토끼는 원망하기 않고 기뻐하는 거북이의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고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또 한 이야기는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했듯이 거북이도 토끼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었다.

 토끼가 용왕님께 붙들려가서 토끼간을 먹겠다고 위협했을 때 토끼가 ‘간’은 육지의 집에 두고 왔다고 용왕을 속였을 때 거북이는 토끼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알고도 고자질 하지 않고 토끼를 등에 업고 도망쳤으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으며 결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던가!

 최근에는 그 많은 동물중에서도 유별나게 토끼들이 ‘산토끼 노래비’를 건립한다고 세상이 떠들썩할 때 그 누구하나 반대하는 데모나 농성없이 축하해주고 어려운 살림에 성금까지 모아주고 축하해 주었단다.

 토끼와 거북이가 서로 위하고 사랑했던 우화처럼 고정관념에 의한 우리들의 생각을 당장 바꾸고, 이웃을 이해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나날을 맞았으면 좋겠다.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힘은 서로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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