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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의 ‘오럴헤저드’(Oral Hazard)
범여권의 ‘오럴헤저드’(Oral Hazard)
  • 박유제
  • 승인 2010.04.0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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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치권에서는 잠만 자고 나면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난다고 한다. ‘현모양처’나 ‘큰집’ 등이 대표적이지만, ‘좌파스님’이나 ‘흑인비하 발언’ 등 원색적인 표현도 쏟아져 나왔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달 18일 한국기자협회가 제주도에서 개최한 ‘ 2010 여기자 포럼’에서 기자들에게 “충실한 어머니와 선량한 부인만 되어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딸 호정씨는 그러나 한나라당에 6ㆍ2지방선거 서울시의원 공천을 신청해 논란을 확산시켰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시중에는 언론이 최시중 위원장을 시중드는데 한계에 달했다는 우스개 얘기까지 나도는 판이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의 경우 ‘큰집’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전격 사퇴까지 한 사례다. 그는 지난달 17일 발행된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MBC 지역사 인사를 김재철 사장 혼자 한 게 아니라 ‘큰집’이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가 방송 장악을 시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특히 “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 김 사장은 청소부 역할을 한 것”이라는 주장도 서슴치 않았다. 방송문화진흥회 수장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집권당의 원내사령탑도 ‘설화(舌禍)’ 레이스에 동참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열흘 전 서울에서 열린 ‘바른교육국민연합’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면서 이른바 ‘좌파 성폭행범’이라는 표현을 썼다.

 안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많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흉악범죄들,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원내대표의 또 다른 설화는 지금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봉은사 외압설’이 그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안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고흥길 의원 등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외압설의 핵심인물인 김영국씨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 원내대표의 말을 전해들은)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가뜩이나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던 불교계가 발칵 뒤집혀진 것은 물론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흑인비하’ 발언도 논란거리다. 김 장관은 지난달 20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대화 도중 “아프리카에는 밀림과 자연만 있다. 그게 관광명소냐. 무식하게 뛰어다니는 흑인만 있을 뿐”이라고 발언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언론보도를 접한 시민단체 측은 지난달 22일 “흑인 비하 발언도 문제지만 마치 현재 제주의 모습이나 기지 건설 반대 주민들을 아프리카에 빗대 비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들 ‘설화(舌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거나 “왜곡됐다” “과장됐다”는 말로 발을 뺐다.

 하지만 중견배우 비하발언을 비롯한 MB의 각종 발언이나 정운찬 총리의 ‘731 독립군’ 발언, 유명환 장관의 “천정배 왜 왔어”나 유인촌 장관의 “찍지마” 발언에 이르기까지 범여권 지도층의 ‘브레이크’ 없는 설화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특정 사회지도층 인사의 오럴 헤저드(Oral Hazard : 모럴 해저드에서 파생된 말. 무분별한 발언으로 인해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오는 것)는 단지 말 실수로 봐줄 수 있겠지만, 이처럼 여권 핵심부에서부터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파생되는 오럴 헤저드는 범여권의 정치적 정책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박유제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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