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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정치, 봄의 예찬에서 나와
참다운 정치, 봄의 예찬에서 나와
  • 승인 2010.03.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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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환
편집부국장
 봄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닫힘에서 열림으로의 의미가 짙은 아침의 계절이다. 때마침 잦은 봄비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대지를 촉촉이 적셔줘 이 봄이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케한다.

 ‘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 손이 커진다’는 속담처럼 봄에 비가 많이 오면 밭작물의 생육이 좋아지고 모심기도 잘돼 풍년이 오며 따라서 아낙네들도 씀씀이가 헤퍼 가정과 사회가 두루 평안해진다는 뜻을 내포한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이 봄의 시작은 아무래도 이제 막 끝난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시작된 것 같다. 누구나 알듯이 종합 5위를 거뒀다.

 지리, 기후, 여건 등에서 동계올림픽과는 거리가 먼 불모지에서 이 분야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 종합 7위에 이어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5위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통 털어 7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은 미국과 독일, 한국 뿐이다. 말 그대로 스포츠강국이다.

 경제는 어떤가 최근 IMF 부총재가 한국의 재무구조가 튼튼하다고 의견을 밝힌바 있지만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수년째 세계 경제 10위권의 경제대국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자원 빈국이 이뤄낸 믿기지 않은 사실이다. 이것이 이 땅의 현실이고 기적이다. 이에 반해 정치는 어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경제와 스포츠라면 정치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봄은 시작의 계절이고 탄생의 계절이다. 봄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자연의 섭리와 지혜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봄철의 밤하늘은 밝은 별이 없다. 허전함으로 가득 찬 하늘에 은하수가 서쪽으로 기울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물뱀, 게, 목자, 살괭이 자리가 봄밤을 수놓는다.

 나무들과 풀들이 기지개를 켜며 막 싹을 띄울 채비를 한다. 개나리와 연분홍 미선나무, 살구나무, 분홍색의 진달래가 산야를 일깨운다. 어쩌다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보라색 제비꽃과 노랑매미꽃이 고개를 내밀고 노루귀꽃이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또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개벗나무, 귀롱나무, 갯버들이 봄내음을 물씬 풍기며 마을 어귀에서 마중 나온다. 미완의 여린 잎이 바싹 마른 풀밭을 헤치고 냉이, 달래, 쑥, 미나리와 파릇파릇한 죽순이 청아한 모습으로 봄맞이에 나선다.

 봄이 무르익는 벚꽃이 피기까지 그저 봄은 겸손과 낮은 마음으로 무참한 지난날을 살며시 뒤로하고 새날 새 한해를 열어가는 것이다. 압제와 억압에서 해방의 물꼬를 튼 3ㆍ1절이 봄맞이 첫날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쓴 역사소설, ‘헨리4세’의 글 중에서 ‘전쟁터에서 죽은 체하며 숨죽이고 누워있는 홀스타프가 죽음을 더 확실하게 위장하기 위해 칼 쥔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을 때, 참흑한 전쟁과 처참한 죽음의 무게조차 깃털처럼 가벼워진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목숨이 가볍다. 혹은 가치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겁게 넘나들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함의를 가진다. 이 문장은 작가가 어떤 의도를 썼던 기자는 이 문장에서 인생을, 그리고 봄을 느낀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미학이 진하게 베여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봄은 용서와 포용의 계절이 된다.

 제2차 대전 때 독일인들은 600만 명의 유태인을 인종청소란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목숨을 빼앗았다.

 단지 유태인이란, 그 이유 하나로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너나없이 가스실에서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지 알 지 못한 채 동물보다 더 비참하게 그렇게 죽어갔다.

 전후 독일 수상은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그때 죽어간 600만의 유태인 위령탑에 헌화하며 무릎꿇고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때 이스라엘인들은 말했다. ‘당신들의 야만적이고 광기어린 집단행동을 용서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잊지는 않겠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용서를 통해 강국이 됐다. 용서 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용서는 자신을 비롯해 모든 것을 시작하는 첫 출발점이다. 미움과 분노는 파멸과 오만으로 정의되는 반면, 용서는 생명과 희망을 열어간다.

 쥘베른은 ‘해저2만리’에서 인간의 법칙에는 맞설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네모선장의 말‘이 새삼스럽다. 정치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법칙에서 나온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권위‘에서 ’민주주의가 흡사 신(神)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즐겨 써 먹는 ’국민의 통치권‘은 실체 없는 수사적 표현일 따름이다. 참다운 민주주의는 명령의 권위가 아니라 설득의 권위여야하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공존하는 ’평화‘이어야한다. 반대편을 제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독선과 아집, 정의를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봄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의미인 것이다. 참다운 정치는 봄의 예찬에서 나온다.

김선환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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