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01 (금)
‘우륵’이 밥 먹여주나?
‘우륵’이 밥 먹여주나?
  • 변경출 기자
  • 승인 2010.01.06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경출
제2사회부 부국장(의령주재)
 신라시대 거문고의 방산악과 작사가 박 연을 비롯해 가야금으로 12곡을 연주해 3대 악성으로 유명한 우륵의 출생지 여부를 놓고 의령군과 군 의회 김규찬(52ㆍ부림면) 의원이 대립 각을 세우고 있자 군민들이 “우륵이 밥 먹여 주냐”며 의령군에 쓴 소리를 하고 나섰다.

 해가 바뀌어도 우륵 사태가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우륵의 출생지는 의령 부림이 아니다”며 지난해 12월까지 3차에 걸친 예산 삭감(5억 원)에 이어 동료 군 의원과 몸싸움까지 불사한 김 의원의 강력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의원은 고향이 자신의 선거구인 부림인데도 불구하고 “우륵의 출생지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바로 잡자는 군민 입장과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원 신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재조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실제로 우륵의 출생지라는 경북 고령에서는 1963년부터 관련 자료 수집에 이어 우륵 박물관과 기념탑을 건립해 놓고 전국에서 출생지 운운하는 주장들에 쐐기를 박아 놓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3년 전부터는 40억 원을 투입한 생가 복원과 이와 관련한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우륵의 출생지인 성열 현이 지금의 의령군 부림면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추정)에만 의존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학술 용역비로 6000만 원이 투입되고 부림문화발전연구회로부터 6개 분야에 용역을 의뢰 받은 참가 학자들은 지난해 5월 군청 대회의실에서 학계 및 사회단체, 군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열현은 6세기 이전까지는 가야 영역에 속했으나 644년에는 백제에 속했고 647년에는 신라의 영토에 속했던 곳으로 후기 가야 연맹에 속했던 소국인 ‘사이기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사이기국이 있었던 곳이 의령군 부림면이라는 학설 개연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학계는 또 현재까지 제기되는 학설 중에 고령 설에 대해서는 “성열 현이라는 지명은 대가야 당시의 것이며 대가야 주위에는 가야연맹에 소속된 제국이 있었다. 그러므로 성열 현은 대가야 관내에 있는 직할 현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명을 전하는 신라고기의 용례로 보아 성열 현 이라는 지명은 가야 멸망 후 신라의 것이며, 대가야 시기에 수도에 현을 설치했다는 주장도 가야의 사회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대구광역시 설 에 대해서는 “대구지역이 백제에게 함락된 적이 없었으며, 644년과 645년 당시 백제와 신라의 주요 전장은 낙동강의 주요 진처인 구미→우곡→부림→삼랑진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역설하는 등 7시간 동안 대 토론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의령군과 학계로부터 이에 대한 반박이 나오지 않으면서 출생지 기념을 위해 20억 원이 투입되는 우륵 공원 등을 조성하겠다는 민선 4기의 시책 사업은 맹물만 들이킨 꼴이 됐다.

 김 의원은 “우륵은 의령을 비롯해 경남 일대를 지나간 흔적은 있으나 부림이 출생지가 아닌데도 일부 몇몇 사람들의 주장에 의해 20억 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며 공원 등을 조성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기자가 지난해 12월 고령에 가서 ‘우륵의 출생지’를 취재할 때 “웃기는 동네 사람들”이라며 “우리도 곽재우 장군이 고령 출신 이라고 생떼를 쓰면 되겠네”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변경출 제2사회부 부국장(의령주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