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0:50 (토)
드라마 ‘명가’와 삼성 이건희
드라마 ‘명가’와 삼성 이건희
  • 박유제 기자
  • 승인 2010.01.04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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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제
편집부국장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지난 2일 첫 방송된 KBS 1TV의 새 드라마 ‘명가’가 방영 첫날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명가’는 이틀간의 방영에서 경주 최씨 가문의 ‘큰 어른’으로 일흔에 가까운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장에 나가 장렬히 전사하는 최진립과, 그의 강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성장하는 손자 최국선의 어린시절을 담았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일컫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초점을 뒀다는 기획 의도를 부각시킨다.

 드라마 ‘명가’는 이처럼 사회적 교훈 제시와 김영철 차인표 등 탄탄한 출연진으로 벌써부터 ‘대박’을 예감하는 다소 이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드라마가 첫 방송에서부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는 사회 심리적 원인은 뭘까? 필자는 그 이유를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 봤다. 얼마 전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이 전 회장에 대해 단독 특별사면 조치를 단행했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단독으로 특별사면 조치를 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면 배경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강원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IOC 위원으로서의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체육계 전반과 강원도민, 그리고 경제계의 강력한 청원이 있어 왔다”고 부연했다.

 야권과 일부 언론이 “가진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한 정권” “법치를 외치면서 법을 모욕하는 정권” “헌법 질서에 대한 농단”이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삼성의 ‘위력’은 대단했다. 보수 성향의 거대언론들은 물론, 삼성그룹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이 이 전 회장에 대한 특사 보도를 축소하거나 자제하는 분위기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해를 넘기면서부터는 일부 진보성향 언론들조차 이 전 회장 특사문제를 재론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그동안 중단됐던 삼성 광고도 실렸다. 국민들의 소리 없는 좌절감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이 전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2008년 원심과 2009년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었다.

 그는 지난 1996년에도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지만, 다음해인 3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을 받은 바 있다.

 두 차례의 특별사면 모두 집행유예 기간을 1년도 채 넘기지 않았었고,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통해 재가했다는 점에서 ‘특혜논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한 그날, 한 지방법원에서는 해당지역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해 주목받는 판결문이 내려졌다.

 대전지방법원 형사5단독 김동현 판사는 이날 지역사회 지도층 인사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질타를 받지 않으려면 사회지도층의 범죄를 더욱 엄하게 훈계해야 한다”고 밝혀 이 대통령의 특별사면과 대조를 이뤘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 상실을 엄히 훈계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다른 범죄자들에 대해 추상같은 기강을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구랍 31일자로 단행된 이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경인년 새해 희망을 설계하던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유전무죄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다가왔다.

 필자는 이건희 전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하는 것부터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올림픽 유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 전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이 막판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런데 이 전 회장에 대한 유죄확정 판결문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니 지나가던 호랑이도 웃을 일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여간 팍팍한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법과 원칙, 사회정의마저 ‘먹고사니즘’의 노예로 전락시킨다면 이 사회는 희망이 없다.

 특정 경제인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특별사면은 나라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물론 외자유치나 관광객 유치, 경상수지 확대를 위해서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르다.

박유제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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