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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발간과 남은 과제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남은 과제
  • 승인 2009.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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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89명의 친일 행적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이 우여곡절 끝에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8년여에 걸친 편찬 작업을 통해 8일 공개한 총 3권, 3천여쪽의 친일인명사전에는 당초 알려진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 위암 장지연을 비롯해 무용가 최승희, 작곡가 안익태, 홍난파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포함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역사적 과제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맞선 적은 없었다.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돼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과거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일부 보수단체와 후손들이 사전수록의 선정기준과 정치적 편향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기록할 만한 일로 봐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친일인명사전에는 해방이후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이미 독립유공자로 지정돼 있던 인물들까지 친일 인사로 분류돼 있다.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혈서를 써서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했고 만주국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합동으로 팔로군을 공격할때 소대장으로 작전에 참가한 점이 기술됐다.

 장면 전 총리는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은 경력으로 사전에 등재됐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시일야 방성대곡‘의 언론인 장지연은 여러차례 친일 성향의 글을 쓴 점 때문에 친일로 분류됐다. 현대무용가 최승희는 국방헌금과 위문금을 헌납한뒤 해방후 친일 행적이 문제되자 월북한 것으로 기술됐으며 미당 서정주는 학병을 권유하는 시와 수필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는 친일인사 선정 기준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 지속성을 고려했으며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더 엄중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또 일부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들을 수록하는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편찬위는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사료를 바탕으로 수록 인물을 선정하는 1차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객관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자신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후손들은 친일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분류자의 주관에 좌우됐으며 직급에 따라 친일 여부를 가른 것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인물사전 공개 직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 장지연의 후손 들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사전발간을 표현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이제 법률적으로는 본안 소송을 통해 사전의 내용이 과연 객관적이며 왜곡이 없는지 등을 따지는 일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친일인명사전은 이제 햇빛을 보게 됐다. 그러나 사전공개로 모든 일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친일인명사전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펴낸 출판물이 아니며 민간차원에서 기울여진 노력의 결과물이다. 법원의 판단처럼 아직까지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리를 넘어선 내용으로까지 공인받은 것은 아닌 셈이다.

 결국 이 사전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권위와 정통성을 가진 연구물로 남기 위해서는 학계와 민간차원의 혹독하고 철저한 검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검증과정에서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면 유연성있게 이를 수용하고 제자리를 잡아주는 것도 사전의 객관성을 확인하는 지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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