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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위장전입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위장전입
  • 박재근 기자
  • 승인 2009.09.20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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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떠나
국민 준법의식 약화시켜
결코 눈 감아서는 안될 것
 지난 14일 열린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그는 부인인 박선영 선진당 의원이 1988년 MBC 사원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주민등록법 위반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며 사과했다. 민 후보자는 1988년 MBC 사원 아파트인 서초구 도곡 한신아파트를 분양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민 후보자는 ‘불법 위장전입’을 단죄하는 위치의 법관이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도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다. 앞서 김준규 검찰총장도 위장전입을 시인했다. ‘법치의 3축’이라는 법원과 법무부, 검찰 지도부가 모두 불법을 자행한 셈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임태희 노동 장관 후보자도 위장전입 의혹에 휩싸여 있다. 정 후보자는 부인이 1988년 주소지를 경기 포천시 내촌면으로 2개월 가량 이전했다. 임 후보자는 제12, 13대 총선을 앞두고 장인의 지역구로 두 번 주소지를 옮겼다. “이명박 정부는 위장전입 정권”이라는 야당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들어 임명된 고위공직자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위장전입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로 공직에 취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선 위장전입은 공직 낙마의 충분요건이었다.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이 문제로 낙마했다.

 위장전입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1970년대 이래 부동산과 자녀 교육이 생존의 양대 과제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위해 거짓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국가의 법ㆍ행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법 행위임에도 많은 이가 ‘생활’이라는 합리화 뒤에 숨어 죄의식 없이 이 일을 저지르곤 했다. 사법당국의 의식이 미약하고 행정전산체계도 미흡해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병은 만연됐고 많은 이가 걸렸다. 한때 폐결핵을 앓았던 환자의 X-레이처럼 지금 흔적이 여지없이 찍혀 나오는 것이다.

 위장전입의 가장 씁쓸한 점은 이 병이 주로 지도층 또는 중산층 이상에서 퍼졌다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은 자녀를 좋은 학군에 보내거나 아파트ㆍ토지를 살 능력이 없어 아예 위장전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위장전입뿐이 아니다.

 논문 이중 게재, 소득 미신고와 탈세 등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단골 메뉴가 다시 나오고 있다. 서민들이 느낄 박탈감과 소외감은 훨씬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을 엄격한 잣대로 털어내다 보면 흠집 없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 수십 년간 만연돼온 이 병을 고쳐야 한다. 특히 공직에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여 언제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부끄러운 청문회를 목격하면서 한국 사회가 얻을 교훈이다.

 위장전입은 징역 3년이하, 벌금 1000만원 이하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2007년 1500여 명이 위장전입으로 입건됐다. 위장전입자들을 처벌한 사람은 바로 검찰과 법관 아니던가?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7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낙마한 장상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똑같은 사안임에도 누구는 낙마하고 누구는 인준된다면 청문회가 아니라 후보자의 운을 시험하는 시험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야에 상관없이 정치권과 주변 인사 상당수가 위장전입을 비롯해 도덕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도덕적 기준과 관계없이 정국 구도가 여대야소냐 여소야대냐에 따라 후보자의 거취가 결정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나 국민들의 준법의식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때문에 모든 위장전입을 눈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도 면책 사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위장전입을 통해 얻은 사적인 이득이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낙마시켜야 한다.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10여년 전 공직자의 위장전입 논란이 정치권에서 공론화하기 시작한 후에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면 공직에서 배제해야 마땅하다.

박재근 창원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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