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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⑤
사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⑤
  • 승인 2009.03.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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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지 않은 ‘너’와, 함께 사는 세상

김은엽(장유도서관 사서)

 시집이든 여행서든 철학서든, 필자의 경우 ‘책’을 읽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그런 것도 있다. 좀처럼 알기 힘든 상대의 마음에 닿고 싶어서. 그 사람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그러는 스스로를 토닥거려 주고 싶어서. 도무지 이해 안 되는 것이 많아지면 책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조용히 다소 능청스럽게 보여주는 책이 있다.

 먼저, 앤서니 브라운의『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삼성출판사)에는 같은 시각 공원을 찾은 네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찰스와 애완견 빅토리아를 데리고 공원에 갔더니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끝까지 쫓아 다니는 ‘끔찍한 개’와 찰스에게 말을 건넨 ‘험하게 생긴 여자 아이’ 때문에 유쾌하지 않게 귀가한 찰스 엄마. 딸 스머지와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갔더니, 개가 어찌나 좋아하며 날뛰던지 개의 반만큼이라도 힘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스머지 아빠. 혼자 너무 심심하던 차에 엄마가 제안한 산책시간 빅토리아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즈음 말을 걸었던 여자아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그 아이와 함께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구름사다리에 매달렸던 찰리. 하루 종일 기운 없으셨던 아빠가 알버트와 나가자고 해서 무척 기분이 좋았던 스머지. 끈을 풀어 주기 무섭게 달음질치던 알버트가 ‘예쁘게 생긴 개’한테 다가가니 붉으락푸르락 화를 내던 ‘개 주인’. 좀 재미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말을 걸고 사귀어보니 꽤 괜찮았던, 그 애가 꺾어 준 꽃 한 송이를 집에 와서 컵에 물을 붓고 꽂아 아빠에게 선물로 드렸음.

 마지막 장을 덮으면 비로소 모든 이야기의 조각이 맞춰진다. 사실은 빅토리아를 쫓던 ‘끔직한 개’의 이름이 알버트이며, 찰스에게 말을 건넨 ‘험하게 생긴 여자 아이’는 스머지, 알버트가 다가가자 붉으락푸르락 화가 났던 ‘개 주인’은 찰스의 엄마, 사귀고 보니 괜찮았던 아이는 찰스였다는 것을.

 전쟁터에서 ‘괴물’일 것 같은 ‘적’의 모습 역시 사실은 나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다비드 칼리의 글, 세르즈 블로크 그림의『적』(문학동네)이란 책도 있다. 바로 저 건너 편 참호에 있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은, 전쟁이 시작할 때 총 한 자루와 함께 받은 전투지침서에 따르면 아무 이유도 없이 여자와 어린아이를 죽이는 야수임에 틀림없다. 그도 혼자이고, 나처럼 배가 고프다는 두 가지 공통점만 빼면 절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위험천만의 존재. 계절이 바뀌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늦은 밤 어둠에 몸을 숨겨 적의 참호로 기습공격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적’은 없고 적의 소지품 몇 개만 보임. 괴물인 줄만 알았던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사진과 단 하나 적의 얼굴이 나라는 것만 빼고 똑같은 전쟁 지침서가 있음. 그렇다면 적은 어디로 간 건지, 그 역시 나에게 기습하려다 나의 참호 안에 있었던 것! ‘두 병사, 그리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의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한 없이 다를 것만 같은 상대도 사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사실은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 찰스가 스머지에게 건넨 꽃이 낙담한 스머지 아빠에게 희망일 수 있기까지 부러 의도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나’와 내가 아닌 무수한 ‘너’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세상사의 재미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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