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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 피해 받으며 ‘빨갱이’ 낙인
연좌제 피해 받으며 ‘빨갱이’ 낙인
  • 방소희 기자
  • 승인 2009.03.0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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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불이익 등 ‘죄인’ 생활… 2006년 유족회 발족
 유족들의 아픔과 유족회 결성과정을 설명하는 안임진씨. 오른쪽 사진은 합동 위령제를 마친 유족들의 시가행진 모습.
 1961년 5.16 이후 전국의 피학살자유족회 대표들이 정부에 의해 구속돼 ‘혁명재판(군법회의)’ 에 회부되면서 1960년 조직됐던 ‘김해유족회’ 와 ‘금창장의위원회’ 도 해체된다.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로 ‘금창장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안임진(71) 김해유족회장은 “유족회 간부 7~8명이 구속되고 그때 유족회 관련서류들도 모두 탈취됐다”면서 “이후에는 잡혀갈까 무서워 유족회가 다시 모이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유족들은 연좌제의 피해를 받으며 ‘빨갱이’ 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안 회장은 “나도 잡혀가지 않기 위해 바로 군대에 들어갔다”면서 “군대에서도 보직 등에서 불이익을 많이 받아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김해유족회 결성

 2005년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안 회장은 김해유족회 결성을 위해 유족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족들의 힘을 합해 진실규명 신청을 하기 위해 그는 우선 집안의 유족들을 설득했다.

 안 회장의 집안에서 보도연맹에 연루돼 학살당한 사람은 모두 9명.

 그 유족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유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 당시의 유족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유족들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억을 더듬고 수소문 끝에 어렵게 유족들을 찾아갔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은 피해를 많이 입고 살아온 유족들이었기 때문에 또 사건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많았다.

 안 회장은 “세네번씩 찾아가 억울함을 벗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설득해 겨우 유족들을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6개월 정도 뛰어다닌 끝에 2006년 봄, 김해 국민보도연맹 유족 50여 명이 모여 김해 유족회를 발족했다.

 유족회 발족과 동시에 진실규명 신청도 이뤄졌다.

 유족회를 통해 신청을 한 유족은 65여 명, 이들을 포함해 총 75명이 김해 보도연맹 사건의 전모를 밝혀달라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조사결과, 그 이후

 김해 국민보도연맹 사건 진실규명결정서를 받아든 유족들은 ‘이제는 후련하다’ 는 반응이다.

 안 회장은 “당시 사건들을 직접 겪으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다”면서 “이제 의무를 다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피해자로 밝혀진 유족들도 “미리 알지 못해 신청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에라도 억울함을 씻을 수 있어 큰 위안이 된다” 면서 “지금이라도 유족회에 가입해 후속조치를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61년 5.16 이후 일어난 합동묘 해체에 대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사실확인이 부족하다는 뜻을 전했다.

 합동묘 해체 이후 유골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부분을 유족들의 진술에만 따르고 있어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무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걸 다시 파헤쳐 유족들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피해자들을 두번 죽인 것이냐”면서 “유골을 정확히 어디에다 훼손했는지 알아야 원통한 마음이 좀 가실것 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합동묘를 파헤치면서 몇백구나 되는 시신을 다 훼손했겠냐”면서 “지금이라도 그자리를 다시 파서 남아있는 유골을 수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김해유족회는 위령제, 손해배상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위령제는 유족들과 날짜를 상의해 5월 말이나 6월 초쯤 개최할 예정이다.

 위령제를 지내면서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이를 계기로 유족들도 더 모집할 계획이다.

 송유승 김해유족회 총무는 “진실화해위원회가 확인한 피해자는 272명이지만 신청인을 제외한 유족의 인적사항 등은 알 수가 없다”면서 “위령제 기간동안 현수막 등을 통해 유족 찾기에 나선 후 소송 등 차후 일정을 의논할 생각이다”고 밝혔다.<방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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