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어린’ 상대에게, 다소, 함부로 내지는 건성으로 “그 때는, 원래, 다, 그래”라는 말을 무심코 건네는 날에 과연 ‘그 때’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길래, 세상 어디에 ‘시작’이 된 배경이나 원인이 없던 것이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고 무모하게 전부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지 따끔하게 다그쳐 주는 책이 있다.
처음으로 이를 뺐던 날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아랫니는 통닭을 먹다가, 윗니는 초콜릿을 베다가 ‘이물질’처럼 뱉어 낸 것이어서 다행히 공포스럽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이가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마들렌에게는 엄청난 일임이 분명하다. 마들렌이 누구던가. 넓은 우주 속의 행성, 그 행성의 한 대륙에, 그 대륙의 한 나라에, 그 나라의 한 도시에, 그 도시의 한 집에, 그 집의 창가에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아니던가! 마들렌은 모두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돌고 온다. 다국적 이웃들의 이국적인 격려와는 달리 아마도 맞벌이라 추정되는 부모님은, 마들렌에겐 이렇게 신나는 하루는 처음인 날에 종일 어디 있었냐고 다그치지만 말이다. 피터 시스의 『마들렌카』(베틀북) 이야기이다.
모두가 과연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미덥잖은 시선을 보내는 주인공이 결코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데, 왜 절대로, 절대로,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는지 항변하는 레피 찰립이 글을 쓰고 존 J 무스가 그림을 그린 『내가 얼마나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아세요?』(내인생의책)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한 일을 안 했다 하거나, 안 한 일을 했다 하지 않는 조금의 거짓도 없지만 책을 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도저히 책을 다 못 읽고 잠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십분 공감된다.
셜리 휴즈가 지은 『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보림)에 나오는 빨간 새 구두를 가진 애니 로즈라는 동생이 있는 앨피는 매일 낡은 갈색 구두를 신고, 좋아하는 진흙탕에서 질척거리다 신발도 젖고 양말도 젖고 발까지 다 젖는다. 엄마가 반들반들 윤기 나는 노란 새 장화를 사 주자 너무나 신이 나 장화가 든 상자를 시장에서 집까지 혼자 들고 와서, 이러저리 쿵쿵거리며 신어보는 장면은 매일 똑같아 보이는 날이 아이들에게는 최고로 특별한 날일 수도 있음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 준다.
세 권의 책은 바쁘고 고단하다는 이유로 사랑니 하나쯤 뺀 것은, 혹은 어제 한 일을 오늘 또 하는 것쯤은 아니면 신상 구두 하나 지르는 것으로는 조금도 두렵거나 특별하거나 설레지 않는 어른들도, 사실은 마음속에 평화로운 냇물이 있음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김은엽(장유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