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8:47 (토)
‘바람의 나라’가 의미하는 것
‘바람의 나라’가 의미하는 것
  • 승인 2009.01.28 1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종민
사회부장
 유신시대에는 방송이나 신문의 뉴스에서 대통령이나 정권에 대한 비판기사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뉴스에 대한 검열이 엄격했고, 반정부성 기사 등은 바로 삭제, 또는 해당 기자와 책임자들이 악명 높은 대공 분실에 끌려가는 등 철저한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해서 방송계는 사극 등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대는 다르지만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재연시키는, 그래서 뭔가의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기능 말이다.

 어떻게 보면 방송작가와 PD들의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들은 이런 사극을 통해 대리만족과 함께 민중정서를 공유하기도 했었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3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KBS특별기획드라마 `바람의 나라`를 기억할 것이다.

 이 사극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다고 하지만 현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극 `바람의 나라`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 유리왕 시대를 배경으로 강국 부여의 대소왕과의 끊임없는 대립관계 등을 다뤘다.

 안으로는 왕가의 권위를 위협하는 비류부의 내압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적절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극의 말미에서 강력한 고구려를 꿈꾸던 유리왕의 대를 이어 부여성을 함락한 무휼.

 부여성이 함락되자 부여의 대소왕은 무휼에게 패배를 시인하면서 "나의 오랜 꿈은 북방에 대 제국을 세우는 것이었다"면서 "추모신검으로 나를 죽이고 천년을 이어갈 대제국을 이루라"고 당부한다.

 무휼은 비록 대소왕이 적국의 왕이었지만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라"고 지시한다.

 죽어가면서 강력한 나라를 요구한 대소왕과 마지막 가는 길에 예우를 갖추는 통치자의 통 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즉, 사극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골자로 작가와 연출자의 의도를 가미한다.

 여기에다 사극이 방영되는 시점의 시대상황과 시청자의 반응 등도 반영해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언론이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하는 현 시대에 왜 이러한 통치권자들의 절정에 달하는 싸움을 도입하고, 승자와 패자의 승복하는 모습과 이를 승화시키는 상황을 연출했을까?

 이 사극의 마지막 장면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승자인 무휼이 그토록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인 호동이와 강가에서 나눈 마지막 명대사를 상기해 보자.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말이 있다. 훗날 넌 태왕이 될 것이니… 저 산처럼 굳건하고 온 백성을 위하는 그런 태왕이 되라고…"

 아들이 아버지 무휼에게 되묻는다.

 "어찌하면 훌륭한 태왕이 될 수 있습니까?"

 무휼이 답한다. "그건 `바람`과 같은 태왕이 되면 된다. 보이질 않으나 이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항상 백성들 곁에 있는 `바람` 말이다"

 무휼은 보태서 설명한다. "힘든 일을 하는 백성들의 땀을 식혀주고, 곡식을 자라게 하는 비를 머금고, 때론 적을 물리 칠 돌풍이 될 수 있는 그런 바람 같은 자사 훌륭한 태왕이 된다"고 말이다.

 태왕의 덕목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금의 경제를 의미하는 곡식, 국방을 뜻하는 돌풍으로 비유한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나 사극은 마지막 편에서 작가와 연출자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즉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데 고민한다.

 그렇다면 이 사극 `바람의 나라`는 무엇을 말하려 했겠는가.

 4개월여 동안 극을 전개시키면서 끝없는 개개인의 욕망과 대결구도를 연출했지만, 종국에는 승자와 패자의 도량(度量)을 보여줬다.

 통치자가 갖추어야 품성은 물론, 나아가야 할 길 까지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는 통치자를 비롯해 국민의 대변자라고 자처하는 정치계 인사들은 이 사극을 다시 보면서, 전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기를 권한다.

 이번 설 명절때 고향에 모인 국민들이 왜 정치에 대한 불만을 하나 같이 토로 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정종민 사회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