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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덕화 선배의 재활의지
[기고] 이덕화 선배의 재활의지
  • 승인 2008.11.1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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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를 보니 이덕화가 나와 오토바이와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갑자기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이덕화와 나는 대학교 같은 학과의 선후배로 학창시절 참 가까이 지냈던 사이였다.

그런 친분으로 개관식의 사회로 기꺼이 와주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의 아프고 힘들었지만 삶아가면서 큰 힘이 되기도 한 그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인 것 같다.

TV를 통해 보신 분들은 알겠으나 그 당시 이미 스타였던 이덕화의 사고는 큰 충격이었고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대형 사고였다.

기억에 무려 10번 이상의 큰 수술과 함께 14일 만에 의식을 차렸던 이덕화의 몸도 마음도 큰 상처를 입었음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학창시절부터 나를 많이 아껴주던 형에게 일어난 사고는 나 역시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덕화의 재활의지는 단호하고 강했다.

그 당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학업을 이어가던 상황이었으나 이덕화의 재활의지에 차마 모른 척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이덕화와 다른 선배 한명과 함께 서해 태안반도의 연포해수욕장으로 재활훈련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연포해수욕장에서의 일과는 걸음조차 힘겨워했던 이덕화의 산책으로 시작해 근력도 키우고 마음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았다.

한동안 걷기조차 힘들어하던 이덕화를 옆에서 보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아파하기도 했고 매일 저녁에 방에 들어가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드레싱할 때면 그날의 사고가 얼마나 크고 끔찍한 것이었는지 눈물이 맺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큰 상처가 날 정도로 심한 사고였는데…

다시 재기하고 일어서고자 하는 이덕화의 의지를 보면서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강인한 정신력에 존경심도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손수 식사를 차려가며 재활에 매달리기를 몇 개월. 전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때 그 연포해수욕장에서 본 인간 이덕화는 그렇게 굳은 의지와 강한 정신력으로 뭉친 멋진 남자였다.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닌데도 내가 상대역을 하며 매일 밤 대본을 읽고 대사 연습에 열정적이었고 하루도 운동을 거른 날이 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재활에 충실했다.

이런 재활을 위해 많은 어려움에도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은 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이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생각나지 않으나 주팔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순박하고 인심 좋은 우리 또래의 이 청년은 이덕화의 재활 소식을 알고 나서부터 해산물이며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특히 게를 한 바구니 잡아 삶아서는 가져다주어 그 게로 도움을 주었던 마을분들과 잔치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사고가 일어난지 3년만에 이덕화는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대중 앞에 나타났고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라 이야기 했지만 큰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직접 바라보고 같이 했던 나는 이덕화의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제나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이덕화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삼기도 하고 끈끈했던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도 생각한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나 이덕화는 브라운관에서, 나는 이곳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있지만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던 그 시절이 나에게 뿌듯함과 함께 큰 힘이 되곤 한다.

박종선 김해문화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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