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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통령 ‘우산’ 발언, 혁신계기 돼야
[기고] 대통령 ‘우산’ 발언, 혁신계기 돼야
  • 승인 2008.10.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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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산과 대출을 연계해 은행들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가 도하 각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어 한동안 회자되었다.

요즘처럼 기업이나 개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을 때 은행에서, 차입해간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것은 맑은 날 ‘우산을 빌려가라’고 권유해 빌려주고는 정작 많은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돌려 달라’고해 도로 가져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라며 이제는 은행들이 제 몸 사리기만 할게 아니라 적극나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다.

기업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의례히 등장하곤 하는 화제의 하나로서 서로 말은 웃으면서 하지만 난감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한 심사를 스스로 달래기 위해 내뱉는 분노와 절망의 언어이기도 하다. 얘기의 요지인즉 경제상황이 좋고 기업이 잘 나갈 때는 거래 은행들마다 앞 다투어 찾아와서 “제 돈만 가지고 사업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 저리자금 융자를 해주겠다, 카드 발급받아 잘 활용하는게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는 등의 간곡한 권유를 하는 바람에 기업인들은 회사가 잘 나갈 때 은행과의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둘 겸 해서 별로 필요성이 높지 않은데도 이리저리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투자를 늘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사업을 확장하며 투자를 늘려나가다가 ‘오일 쇼크네, IMF위기네, 세계적 금융 위기네’ 라는 말이 돌면서 경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면 지금까지의 돈독하던 인간관계는 크게 도움 되지 못하면서 어려운 기업여건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출 원금을 상환하라는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다.

역지사지해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한편으로 금융기관들의 빚 독촉에 대해 서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만큼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은행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사면초가에 놓인 기업인에 대해 “당신 사정도 딱하긴 하지만 우선 내 코가 석 자니 우리은행 차입금부터 갚아달라”며 독촉의 강도와 수위를 높여가는 금융권들의 조치를 무턱대고 탓할 일만은 못된다.

필자 역시 기업 경영인으로서, IMF 위기 때 직접 그런 상황을 실제로 겪었을 때에는 “내가 그들의 말만을 너무 믿은 나머지 중대한 경영상의 오판을 해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함정에 떨어졌구나”라는 자책감과 절망감으로 괴로워한 적이 있었던 만큼 이러한 내용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위기일발의 위험한 상황에서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 역시 한 때 증오와 원망의 대상으로 여겼던 또 다른 금융기관의 위험을 무릅쓴 지원 덕택에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해낼 수 있었다는 점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법적으로든, 금융기관의 특성상이든 정작 비가 많이 내릴 때 우산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금융기관의 특수한 시스템을 감안하지 않고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기업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지 말라고만 주문한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 앞선다. 말은 좋은 말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못하고 있는 지에 대해 근본 원인을 깊이 헤아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기 좋은 말, 듣기 좋은 말로 대내외에 천명해 분명코 생색은 나는데 정작 기업을 돕고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그 어떤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공허한 말잔치요, 겉만 번지르르한 공치사로 끝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이치이다. 최근에 불거져나와 어쨌든 그 말을 듣는 기업인들에게 적지 않은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대통령의 ‘우산 발언’이 끝까지 저력을 발휘해 ‘비올 때 우산을 도로 달라’는 금융계의 이상한 관행을 불식시키고 본래의 금융기관 설립취지에 맞도록 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금융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윤세 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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