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6:30 (월)
통영장날 만세운동 ‘기생단 판결문’ 공개
통영장날 만세운동 ‘기생단 판결문’ 공개
  • 승인 2008.03.04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기록원, 3월의 기록 선정
국가기록원이 이 달의 기록(3월)으로 선정해 공개한 ‘기생단 판결문’을 통해 통영 기생 정막례(21), 이소선(20)의 독립운동 활약상이 확인됐다.

판결문에는 두 사람이 1919년 4월2일 통영장날 만세운동에 동료기생 5명을 모아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반지를 팔아 산 장의용 핀과 짚신 등 상복을 입고 3,000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돼있다.

시위 직후 검거된 두 사람은 부산지법 통영지원에서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통영장날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2일 고채주, 강윤조, 김영중, 박상건 등이 주동해 중앙시장에서 3,000여 시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통영경찰서로 쳐들어간 사건으로 주동자 모두 심한 고문과 실형으로 고초를 겪었다.

통영시지가 인용한 당시 재판기록에는 “이들은 예명으로 정홍도, 이국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당시 항남동에 있던 기생조합에서 동료 5명과 함께 33벌의 상복과 태극기를 제작해 중앙시장 만세운동의 선두에서 절규했다”고 기록돼 있다.

통영 기생조합은 일제에 의해 조합으로 조직되고 만세운동 당시의 항남동에서 일제말기인 1940년대 태평동으로 옮겨져 1960년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용(통영역사관 관장) 향토사학자는 “통영장날 만세운동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초를 겪었다”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낮은 신분에도 만세운동의 선두에 섰던 두 여성은 시민들이 널리 기려야 할 대상이다”고 말했다.

일제시기 암울했던 민족의 해방을 위해 통영장터 만세운동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했던 정막례, 이소선 두 여성의 이름은 통영 원문공원 3·1운동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