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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로움을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의 외로움을 강에 가서 말하라"
  • 하영란
  • 승인 2024.03.13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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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⑪
황인숙의 시인의 '강'

외로움, 괴로움, 치사함을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그것이 서로를 지키는 것
황인숙 시인
황인숙 시인

인간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유한성으로 인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인간은 나 아닌 다른 것들을 먹고 살아야 한다. 또 다른 것들과 관계 맺고 도저히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주위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가진 감정들은 또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변덕스러운 날씨보다 더 변덕을 부린다. 나마저도 나 자신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나 외롭고 괴롭겠는가.

먹는 것이 곧 그 자신이 된다. 먹는 것은 꼭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감정이나 생각, 말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것을 먹으면 우울하고 부정적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만 나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나를 먹인다. 타인의 우울이, 부정이 허약한 심장을 뚫고 들어온다. 연인이 사귈 때 둘 다 징징거리면 오래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계속해서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 먹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감정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많이 생긴다. A는 항상 자기가 힘들 때 자신의 어려움이나 힘든 감정에 대해 털어놓는다. B는 언제나 묵묵히 잘 들어준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됐을 때 A는 B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들어주더라도 건성으로 듣고 공감도 해주지 않을 때 서운함이 밀려온다. 이럴 때 황인숙의 '강'이란 시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삶이 자기 한몸 살아갈 여유마저도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의 팍팍한 마음이 엿보인다. 서로 힘들다고 하면 결국엔 서로를 피하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서 계속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을 한없이 안아 줄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하다.

오늘의 먹이와 오늘의 나를 누일 장소를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도시인들의 삶이 타인의 하소연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각자도생이다. 외로워도 외롭다고 괴로워도 괴롭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더 외로운 우리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 강으로 달려가자. 강으로 가서 실컷 말하고 나서 서로의 얼굴을 혹여 볼지라도 모른 척하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한때 약한 마음이 밀려왔다는 것조차도 숨기고 싶다. 강에게 실컷 말하고 건강한 척 밝은 척하면서 걸어가자. 이것이 타인을 우울의 늪으로 끌어내리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 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의 시집 '자명한 산책'에서

*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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