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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중독된 고립의 시대
핸드폰에 중독된 고립의 시대
  • 경남매일
  • 승인 2024.02.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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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인 노리나 허츠 박사는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에서 '외로움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고, 투명 인간이 되어 누구도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자각이다'고 했다. 이 세상 아무도 나에 대해 관심이 없고 나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로움에 관한 연구통계에 의하면 미국 성인 5명 중 3명, 독일인의 3분의 2가 가끔, 자주, 또는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도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세계 최초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정책을 실시한 영국정부에서는 외로움의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인식하고 지난 2018년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 외로움의 문제는 일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간파한 것이다.

시인 류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왜 새삼 그립다고 했을까? 이는 사랑하는 감정의 극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비록 함께 있어도 사랑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이 넘쳐흘러도 모자랄 이 세상이 왜 갈수록 외로운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까? 이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그 가까운 원인은 3년여에 걸쳐 유행한 코로나19로 비대면 격리 생활이 계속되면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격리 조치가 해제되었음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코로나19가 남긴 트라우마로 대면접촉에 의한 질병 감염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회복되겠지만 외로움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비대면 생활 패턴은 가족해체가 시작되면서 급진전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 일본의 홈리스 노숙자들은 고독을 견디다 못해 일부러 편의점의 물건을 훔쳐 감옥살이를 자처한다고 한다. 그리고 외로운 노인들의 범죄행위가 증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혼자 지낼 때 느끼는 외로움을 범죄자 수용소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재소자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동류의식을 느끼는 가운데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파편처럼 쪼개지고 흩어진 고립사회의 자화상이다.

비대면 격리 현상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미국 요양병원 입주자 60%가 방문객이 아무도 없고, 영국 노인 인구의 5분의 2는 TV가 주된 친구라고 한다. 너튜브의 짝 찾기 창에 뜨는 60대~80대 남녀 노인들의 구혼호소를 들어보면 외로움을 이길 장사는 없는 것 같다. 외로움은 전 세대가 느끼는 고립감이다. 미국 학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학교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며, 영국에서는 18~34세 연령층 5명 중 3명이, 10세~15세 아동과 청소년은 거의 절반이 자주 또는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조사해 보면 대차 없을 것이다. 이제 외로움은 청소년, 성인, 부부, 연인, 선생님과 학생, 상사와 부하, 고용주와 근로자, 정치인과 국민 등 남녀노소 사회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괴리감이 되었다.

외로움은 정치적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국론분열과 극단적 정치대결 양상이 심화되는 이면에는 외로움과 정파적 포퓰리즘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극우파의 급부상, 서유럽을 비롯한 동유럽, 중동, 남미 등지에서 극우파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처럼 외로움은 단순한 개인적인 정서적 분리현상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전반에 걸쳐 극단주의사회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로움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지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혼자만의 철옹성을 쌓게 된 것은 바로 핸드폰과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대면 대화보다 비대면 의사소통을 선호한다. 학교 강의나 회의도 랜선으로, 직장생활도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있다. 영화 관람도 극장과 포털사이트의 OTT 서비스가 양분하고 있다. 연인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각종 보고서도 카톡이나 메일로 한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으면 불안해한다. 버스나 지하철, 식사 때나 모임, 산책 중에도 스마트폰의 벨소리는 끊임없이 울린다. 핸드폰에 매몰된 현대인들은 대면 기회 상실에 따른 외로움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상태에 빠져들게 한다.

원인불명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까지 일으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복잡한 도시에 살면서도 군중 속의 고독을 무시로 느끼며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하루 221번, 1년에 1200시간을 핸드폰 터치에 혼을 빼앗긴 현대인들은 작은 손바닥 기계에 삶을 의탁한 채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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