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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덕목, 사자와 여우
리더의 덕목, 사자와 여우
  • 경남매일
  • 승인 2024.01.0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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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허성원 변리사

케이론이라는 켄타우로스족 현자가 있다. 켄타우로스 족은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인 반인반마의 종족으로서 동물로서의 야성적 본능이 강하다. 하지만 케이론은 그들과 달리 선량하고 지혜로웠다. 아폴론의 친구로서 그로부터 의술, 궁술, 음악, 예언 능력을 전수해, 헤라클레스, 이아손, 아킬레우스 등 많은 그리스 영웅을 가르친 스승이 되었다.

케이론은 특히 아킬레우스와의 인연이 깊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와 특별한 친분이 있어 인간인 그가 여신 테티스 여신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아킬레우스가 갓 태어났을 때 엄마 테티스가 그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는 과정에 남편과 뜻이 맞지 않아 다치게 된 다리를 고쳐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를 어릴 때부터 맡아 길러 그리스 최고의 영웅으로 성장시켰다.

이 케이론이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 등장한다. 16세기에 출간된 군주론은 군주가 어떤 덕목을 가지고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너무도 현실적인 조언을 담고 있다. 특히 '필요에 따라 잔혹하고도 비열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군주론 제18장에서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언급하면서 케이론이 언급돼 있다. 이와 관련한 군주론의 내용을 옮겨본다.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고대의 많은 군주들이 반인반수인 케이론에게 맡겨져 양육되고 교육받았습니다. 반인반수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것은, 군주가 이러한 두 가지 성품을 모두 갖춰야 하며 어느 한 가지를 갖추지 못하게 되면 그 지위를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주라는 리더는,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지킬 수 있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성품과 짐승으로서의 성품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앞서 설명하고 있다.

"싸우는 데에는 두 가지 수단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법률에 따른 것이며 다른 하나는 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짐승에게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방법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을 감당할 만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에 의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과 인간의 성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대단히 직설적이고도 실용적인 조언이다. 인의를 강조한 동양의 제왕학이나 왕도정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더십을 말하고 있다. 짐승과 인간의 성품을 겸비하여야 한다는 것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부드러움으로 부리고 강함으로 다스려라(令之以文 齊之以武)'라는 가르침과 가깝다. 아무리 법과 질서를 강조해도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그리고 인의를 도외시하고 오직 무력만으로 통치하는 것은 위태롭고 지속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인성과 야성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적절하다.

그러면서 짐승의 성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짐승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성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자는 함정을 피할 수 없으며 여우는 늑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으며 늑대를 깜짝 놀라게 하려면 사자가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자의 역할만 하려는 군주는 모든 일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은 단순히 강하기만 해서는 위태롭다. 그래서 사자의 강함에 여우의 지혜가 뒷받침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우의 기질은 필요에 따라 사악한 처신도 불사한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는 군주 자신이 언급한 약속도 과감히 어길 수도 있어야 한다. 상황이 불리해지거나 약속의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약속을 파기해야 하며, 그에 대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언제나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여우의 기질을 잘 활용한 군주들이 언제나 성공을 거둘 수 있지만, 그 기질을 교묘하게 감추는 방법을 알고서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거짓말을 능숙하게 할 필요도 있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사악함까지 활용하라는 말 때문에 군주론이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마키아밸리는 리더의 인간적인 성품과 미덕을 부정하거나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악함과 같은 야성적 성품은 필요할 때만 활용하여야 하며, 평소에 그런 성품을 마구 드러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인간적이고 정직하며 근엄하게 보이는 것이 좋으며 실제로 그런 성품을 갖추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품을 보이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정반대의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리더는 자신이 리더로서 취할 수 있는 좋고 올바른 태도를 잘 알고 평소에 실천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비열하고 사악한 태도는 잘 체득해 두었다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인간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이면에 사악함을 숨겨두고는 필요에 따라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한마디로 입에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은 구밀복검(口蜜腹劍), 혹은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리더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기회에서 위기를 보고 위기에서 기회를 항상 함께 생각하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그러니 강력한 사자의 힘에다 사악함마저도 불사하는 여우의 지혜를 겸비하라. 이는 항상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면서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리더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수적인 덕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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