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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의 활,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헤라클레스의 활,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 경남매일
  • 승인 2023.12.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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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허성원 변리사

영웅 헤라클레스의 최후는 허무하였다. 아내의 오해와 질투가 그를 죽였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여겨,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사랑의 부적을 옷 속에 붙여주었다. 그것은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 종족인 네소스의 피를 묻힌 천 조각이었는데, 거기에 치명적인 독이 있었다.

헤라클레스 부부가 물살 거센 강을 건너려 할 때 네소스가 돕는 척하며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였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히드라 뱀의 독이 묻은 화살로 네소스를 쏘았다. 네소스는 죽어가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자기 피를 간직했다가 사랑의 묘약으로 쓰라고 일러주었다. 히드라의 독이 퍼진 자기 피로 헤라클레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속였다. 그리하여 '죽은 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헤라클레스의 신탁이 실현되었다.

히드라의 독은 헤라클레스를 고통에 빠트렸고, 그 고통은 죽음만이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죽기 위해 장작을 쌓아 그 위에 누워서 그곳을 지나는 필록테테스에게 불을 지펴달라고 요청하였다.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자신이 쓰던 활과 화살을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의 활을 가진 필록테테스는 무적의 용사가 되었다.

그 후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런데 트로이로 항해하다 잠시 들렀던 섬에서 물뱀에게 발을 물렸다. 상처에서 심한 악취가 났고 통증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악취와 비명을 견디지 못하는 그리스군을 위해 오디세우스는 필록테테스를 렘노스섬에 버리고 갔다. 필록테테스는 거기서 헤라클레스의 활로 사냥을 하며 근 10년간을 외로이 연명하였다.

한편 그리스군은 10년이 되도록 트로이를 멸망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다 예언자인 트로이의 왕자 헬레노스를 붙잡아 트로이를 무너뜨릴 세 가지 조건을 듣는다. 거기에 필록테테스와 헤라클레스의 활이 들어있었다. 필록테테스를 데려오는 임무를 오디세우스가 맡았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으로 인해 버려진 필록테테스의 원한을 알기에,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대동하였다. 그 이야기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작품 '필록테테스'의 주제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록테테스를 데려가야 하지만, 증오심에 찬 그를 설득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고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속임수를 쓰자고 설득하였다. "자네가 천성적으로 거짓을 꾸며대거나 부정직한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승리처럼 달콤한 전리품은 없다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하네. 우린 후에 정의로운 사람들로 밝혀질 거야. 그러니 잠시 오늘 하루만 수치심을 느끼지 말고 나를 따라 주게."

명예를 존중하는 네오프톨레모스는 양심의 저항을 무릅쓰고 일단 오디세우스의 말에 따른다. 필록테테스를 만나 거짓으로 그의 신뢰를 얻고,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에 힘들어하며 오디세우스에게 말한다. "수치스러운 거짓과 교활한 속임수로 그를 붙잡은 일이 부끄러워요. 내가 빼앗은 활을 돌려줄 생각입니다. 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 활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걸 갖고 있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리고 "자네야말로 너무나 고귀한 아버지의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아들"이라는 필록테테스의 비난도 들어야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결국 활을 필록테테스에게 돌려주고는, 함께 가서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병을 치료하자며 설득한다. 그러나 원한 맺힌 필록테테스는 트로이로 가는 것을 거부하며 고향으로 데려다 줄 것을 요구하였고, 오디세우스는 무력을 써서라도 그를 강제로 데려가려 하였다. 모두 자신의 입장을 강경히 고집하며 누구도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교착상태는 다소 허탈하게 해결되었다. 헤라클레스의 영혼이 나타나 설득한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필록테테스에게 트로이로 가서 의술의 신에게 병을 치료받고, 그의 활로 트로이를 함락시켜 그리스군의 칭송을 받으라고 하였다. 치료와 복수를 모두 해결하는 묘책이니, 필록테테스는 그 말에 따르기로 한다.

이와 같이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긴박한 국면을 풀어가는 그리스 연극의 기법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한다. 소포클레스는 왜 이런 기법을 도입했을까?

오디세우스, 네오프톨레모스 및 필록테테스 세 사람에게는 각자 그들만의 정의가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정의는 그리스군의 승리로서 그에게 지상의 명제였기에, 속임수든 폭력이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를 데려가야만 했다. 필록테테스는 복수의 화신이다. 그를 버리고 간 자들에게 보복하는 것이 그의 정의이다. 네오프톨레모스에게는 어떤 목적도 양심과 명예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그의 정의는 개인의 양심과 명예였다.

세 사람의 정의는 모두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의 정체성이니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양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작자인 소포클레스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가기 위해, 부득이 헤라클레스를 등장시켜 모두를 만족시킬 창의적 옵션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탁월한 협상가 혹은 중재자로서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오디세우스, 네오프톨레모스 및 필록테테스 세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삶에서도 모든 인간에겐 각자 나름의 정의가 있다. 어느 누구의 정의가 다른 정의에 의해 부정되거나 강요당할 수는 없으니, 온갖 정의들이 빈번히 충돌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해결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의들의 충돌을 푸는 또 다른 정의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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