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2:39 (월)
빙하, 혹은 바다 같은 - 남상진
빙하, 혹은 바다 같은 - 남상진
  • 경남매일
  • 승인 2023.12.20 21: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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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가두는 방식을 훔치고 싶었다
종이처럼 구겨진 햇살을
속에다 품고도
차가운 냉기를 세상에 흘려보낸 아버지
세상의 결집력이 느슨해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때까지
아버지는 빙벽 사이를 오래 서성거렸다

크레파스 틈으로 간간이 보이는 
푸른 세상을 캐내고 싶었을까
눈발처럼 흩날리던 아버지의 시간이
쌓인 빙하의 푸른 속살

밖으로
차가운 냉기를 흘리고도
차곡차곡 속 멍이 들었을 아버지
그를 위한 따듯한 내 기도가
빙하 속까지 닿지 못할 때마다
나는 
크레파스를 흘러온 물처럼
오랫동안 차갑게 흘렀다

시인 약력

 

- 2014년 《애지》 등단
-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철의 시대 이야기》
- 민들레문학상, 제7회 애지작품상 수상
-《경남문학》편집위원, 마산문인협회 회원, 민들레문학회 회장

 

 

☞  아버지라는 이름은 남자라는 이름인 동시에 가정이라는 성(城)을 지키는 영주(領主)이다. 시인에게 아버지는 바다에 떠 있는 빙하였다. 빙하의 깊고 푸른 속살은 세상과 부딪힌 멍자국이다. 빙하의 크레바스는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갈라진 틈인 것이다. 그래서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었던 기도는 정작 나를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지금도 망망대해를 흘러가는 빙하의 아버지들을 위한 노래이다.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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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023-12-21 14:36:07
'아버지라는 이름은 남자라는 이름인 동시에 가정이라는 성(城)을 지키는 영주(領主)이다.'
위 문장 공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