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23:59 (일)
'역사'는 땅에서 시작한다
'역사'는 땅에서 시작한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3.10.18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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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최근 서울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면서 지하와 지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서울역에서 삼성역까지 지하철로는 37분이 걸린다는 지하철 앱의 설명에도 동행은 택시를 고집했다. 승객이 많아 10여 분을 기다려 택시에 승차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이면 벌써 3분의 2가량을 이동했을 것 같았다. 출근 시간이 넘은 시간이었으나 교통체증으로 거북이 운행을 했다. 택시는 교통체증을 피해 용산, 서빙고를 거쳐 코엑스로 향했다. 택시 창가로 보이는 한강의 뷰와 서빙고의 고즈넉한 거리 풍경에 잠시 빠졌다. 그동안 서울에서도 지하철로만 이용해서 거리와 풍경은 참으로 생경했다. 정겹기도 했다.

문득, 이동 수단이 지하철뿐인 사람과 자가용 그리고 지하철을 병행하는 사람들과의 괴리감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부산 근교에 살면서 부산에 가면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서면, 남포동, 해운대 등 대부분의 지역에는 지하철로 이동한다. 여기에다 걷기를 좋아해서 지하철역을 기점으로 걷는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운동 삼아 또 도시의 거리를 보기 위해 부산역에서 남포동까지는 자주 걷는다. 부산역에서 서면까지는 오래간만에 걸었다. 소년 시절 춘해병원을 거쳐 보림극장~서면으로 걸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길과 거리는 흐른 세월만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중간중간 큰 대로와 건물이 도시 발전의 기회로 생겨나면서 예전의 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기억을 아무리 짜내도 예전의 거리의 풍경과 지금의 거리 풍경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고가다리를 거쳐 춘해병원, 부산상공회의소로 이어졌던 길은 사통팔달로 길이 나 있어 헷갈리게 했다. 느낌대로 걷다 보니 길은 서면 롯데백화점 쪽으로 이어졌다. 목표로 정했던 교보문고 빌딩과는 반대쪽이었다.

택시는 서울 용산 서빙고동을 지나고 있었다. 미군 부대 표시판 등이 보였고 12·12 사태 때를 연상케 하는 군부대 분위기가 느껴졌다. 소년 시절 친척 집을 방문할 때는 버스를 타고 서울 구경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당시에는 지하철이 없었다. 이후 청년이 돼 연수나 여행 출발을 위해 서울을 찾았을 때는 이동 수단은 단연 지하철(1974년 개통)이었다.

서울 택시를 타게 되면서 예전의 서울 거리가 새삼 떠올랐다. 때마침 지난 7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 초청 상영된 서울대학교 영화연구회 '얄라셩'의 영화 <서울 7000>(1976년)이 서울 거리에 대한 향수와 감수성을 자극했다. '얄라셩' 출신인 김홍준 감독(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의 작품인 이 영화는 1976년 서울의 거리 모습이 담았다. 이 영화는 서울의 낮과 밤 등 서울 거리를 7000프레임의 영상을 콤마 촬영방식을 제작했다. 빨리 감기의 속도로 보여 주는 1976년 서울의 거리는 예전 서울을 찾았을 때 자주 보았던 풍경들이었다. 1980년 전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 때면 서울을 거쳐 갔다. 당시 서울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도 했다. 지금의 서울 거리와 오버랩 됐다.

오랜만에 지상에서 이동하면서 목격하게 된 서울의 풍경을 보면서 문득 지하철은 공평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은 지상의 교통체증을 피해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한 번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고 쾌적하고 도착 시간이 정확하다. 물론 러시아워 등에는 운집하는 탑승객들로 인해 지옥철로 변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하철에 길든 사람들은 정시 도착이라는 장점밖에 모른다. 특히 MZ세대는 지하철이 최애 교통수단이다. 캄캄한 지하터널을 지나면서 잃는 것도 많다. 기성세대는 지상에서의 추억이 있고 지리를 잘 안다.

그러나 기성세대와는 달리 MZ세대는 지상에 대한 기억이 잘 없다. MZ세대는 자신의 주거지와 직장 외 다른 지역의 거리를 경험하지 못한다. 주로 지하철을 이동하면서 지상의 거리·건물·산·하천 등 자연과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여행을 가서 남의 나라 도시의 풍경은 고스란히 눈에 담아 온다. 지상의 풍경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내 나라 내 강토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차창 밖에 컴컴한 터널 속에서 휴대폰이나 본다.

땅 위의 인문지리의 모습은 새기지 못한다. 그렇게 지상의 인문지리를 알지 못하면 정보 부족으로 땅 위에서의 운전, 부동산 취득 애로 등으로 생활이 불편하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고장 등 유사시에는 이동이 어렵다.

오래전 부산 UN기념공원에서 길을 잘못 든 적이 있다. 밤인데다 내비도 고장이 나 어려움을 겪었다. 부전도서관 인근에 8차선 경포대로가 펼쳐져 혼란은 더 가중되고 좌절을 했다. 역사는 땅 위에서 기록된다. 사람은 땅 위에 있다. 여유를 가지고 버스로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자. 그것이 유사시 경쟁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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