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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주인의 텐트를 차지하는 법
낙타가 주인의 텐트를 차지하는 법
  • 경남매일
  • 승인 2023.10.0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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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음흉한 낙타가 착한 주인의 텐트를 뺏어 차지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낙타와 주인이 사막 여행 중에 야영을 하게 되었어. 주인이 텐트 속에 들어간 후에, 바깥 추위를 참던 낙타가 텐트 틈으로 주둥이를 들이밀고 애처롭게 말하는 거야. "주인님, 추워요. 제 코만이라도 텐트에 들여놓으면 안 될까요?" 착한 주인은 그 정도라면 물론 "그렇게 하게"라고 허용하지. 텐트 안의 온기를 마시니 바깥 추위는 더 크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주인님, 머리는 넣어도 되겠죠?"라고 하니, 착한 주인은 또 받아주고, 이어서 앞다리를 말하자 그것도 들어오게 해주었어.

낙타가 거기서 멈출 수 있을까? 몸통은 여전히 춥고, 주인의 마음씨도 여리다는 걸 알았어. 이젠 허락도 없이 몸통을 우겨넣으려 하는 거야. 주인도 위기를 느끼고 막으려 했지만, 낙타는 이미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와 버렸지. 얼마나 비좁고 불편하겠어? 그러자 낙타가 말하는 거야. "이 공간은 함께 쓰기엔 너무 좁군요. 둘 중 하나는 나가야 할 텐데, 당신이 좀 나가주시죠." 그러고는 몸부림을 쳐서 주인을 밀어내 버렸어. 쫓겨난 주인은 추위에 배신감까지 더해서 심신이 모두 괴로운 밤을 보내야 했지. 그뿐이 아니야. 주인을 만만하게 보게 된 낙타에게 이제 주인의 명령이 제대로 통할 리 없으니, 남은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까?

이게 낙타가 주인의 텐트를 뺏어 차지하는 법이라네. 낙타에겐 통쾌한 일이겠지?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게. 영악하고 뻔뻔한 낙타에게 텐트를 빼앗기고 추운 바깥에서 밤을 새야 하는 착한 주인의 억울하고도 한심한 상황을 말일세.

낙타의 텐트 빼앗기는 마케팅이나 설득의 분야에서 '한 발 들이기 전략(Foot in the door strategy, FITD)'이라고 부른다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나 집단이 지배하는 시장 즉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 있다고 하세. 그런 시장에 처음 들어갈 때 무작정 밀고 들어가면 큰 저항에 부딪칠 수 있어. 풀숲을 건드려 괜히 뱀을 놀라게 하는 것과 같지. 처음엔 그들이 아무 경계심 없이 허용할 만큼, 낙타가 코만 밀어 넣듯, 발끝만 아주 조금 살짝 들여놓아야 해. 그렇게 작은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적시듯 야금야금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거야. 그게 낙타의 현명한 전략 아니겠나?

'한 발 들이기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은 '일관성의 심리' 때문이야. 작은 요청을 들어준 사람은 그 이후에 좀 더 큰 요청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법이지. 낙타 주인이 낙타에게 코, 머리, 앞다리를 순차적으로 허용한 것도 그 일관성 때문이야.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부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도 "당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당신의 호의를 입은 사람보다, 당신에게 또 다른 호의를 베풀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이를 벤자민 효과라 부르지.

이를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가 있어. 1966년 프리드먼과 프레이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차창에 '안전 운전'이라는 작은 스티커의 부착을 요청했지. 아주 사소한 부탁이라 동의한 사람이 많았지. 그 후에 그들의 앞뜰에 '안전 운전합시다!'라는 작은 입간판의 설치를 부탁한 거야. 어땠을까? 스티커를 부착한 사람들은 76%가 간판 설치에도 동의했어. 그런데 스티커 부착 과정 없이 바로 입간판 설치를 요청받은 사람들은 동의율이 17%에 불과했다네. '한 발 들이기'의 설득 위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내친김에 '면전에서 문 닫기 전략(Door in the Face, DITF)'에 대해서도 알아두도록 하세. 낙타가 처음에 아주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야. "주인님, 텐트에서 함께 자게 해주세요."라고 말일세. 어림없는 말이니 주인은 당연히 거절하겠지? 하지만 거절한 쪽은 약간의 미안함이 마음에 남기 마련이야. 그때 낙타가 말하지. "그럼, 머리만이라도 좀 안될까요?" 주인은 그것마저 거절하지 못하고 허용하게 되어 있어. 처음 면전에서 문을 닫으며 거절한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좀 약해진 다음 요청에 대해서는 쉽게 문을 열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야. 그걸 '상호성의 심리'라고 한다네.

'한 발 들이기'가 일관성의 심리를 이용하여 요구를 점차 높여가며 설득하는 전략이라면, '면전에서 문 닫기'는 상호성의 심리를 자극하여 요구를 줄여가며 설득하는 전략이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선택적으로 혹은 조합해서 써볼 수 있는 아주 실용성이 뛰어난 낙타의 가르침들이 아닌가?

이제 낙타 주인의 입장도 생각해보세. 낙타가 슬쩍 코끝을 들이밀면 어떻게 하겠나? 낙타의 그 가증스런 습성을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리 애처롭게 사정해도 단호하게 대처해야겠지? 그 코끝을 인정사정없이 내리쳐야지. 다시는 텐트 속을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말일세.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거나, 노자가 말하는 '천길 높이의 방죽도 개미구멍으로 인해 무너진다' 등이 바로 그 가르침이 아닌가? 그렇게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면, 낙타는 제 팔자를 알고 욕심을 접고 추위를 참으며 잠을 청할 것이고, 주인도 평온함 밤을 보낼 수 있어. 그리고 다음 날에도 주종관계는 변함없이 순조롭게 여행을 계속하겠지. 이처럼 리더의 지혜로운 통찰과 분명한 태도가 조직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법이라네.

자 그러면, 그대는 낙타인가 주인인가? 텐트를 빼앗으려는가 지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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