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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와 유적지 실태 학술회의
독립유공자와 유적지 실태 학술회의
  • 경남매일
  • 승인 2023.08.3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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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와 유적지 실태 학술회의가 2023년 8월 23일 창신대학교 대강당에서 광복회 경남도지부 주관으로 열렸다. 박형인 광복회 경남도지부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학술회의는 경남지역 미발굴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첫걸음으로 의미가 크다"고 하였다.

경남지역 독립운동가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처절한 의병활동을 시작으로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청산리 봉오동 전투 등에 참여하였으며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광복군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49년 10월 27일 불순세력의 진주법원(진주지방재판소) 방화로 인해 의병의 판결문을 비롯하여 3·1독립운동과 간도와 연해주 및 중국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던 우국지사의 공적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만시지탄이나 진주법원에서 재판받았거나 옥고를 겪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기록을 찾는 일과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에 관한 학술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학술회의 제1 주제는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 포상 실태 연구'였다. 발표자는 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인 이태룡 박사였다. 이분은 우리나라 의병관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이분의 노력으로 수천 명이 국가보훈자로 신청되었다.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 중 미포상자 266명을 발굴하여 국가보훈자로 신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896년 2월 19일 의병장 노응규는 경남 함양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튿날 새벽 진주 관찰부를 점령하고 정한용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경남전역으로 의병이 확대되고 약 2개월 동안 의병천하를 이루었다. 을사늑약 후 경술국치까지 경남은 수천 명이 의병으로 활약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3·1 독립만세 시위로 창원 320명, 함안 227명, 합천 184명, 사천 120명, 밀양 105명, 김해 52명 등 경남에서 1270명의 순국자가 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에서 100명 이상 순국자가 발생한 지역은 19곳인데 경남지역이 5곳일 정도로 대단했다.

부상자도 2019명, 투옥자가 5012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3·1 독립만세 공적으로 포상된 사람은 720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1949년 10월 불순세력의 진주법원 방화였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경찰대는 1949년 1월 독립운동가를 악독하게 고문하고 죽인 노덕술(울산 출신)과 하판락(진주 출신)을 비롯한 일제의 주구 경찰들을 체포하였다. 이들은 체포되기 전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장 최난수 등과 공모하여 반민특위 간부인 국회의원 노일환과 이문원 등을 암살하려고 공모하였다. 이 공모가 발각되자 반민특위 위원들을 빨갱이로 모는 국회프락치 사건을 만들어 반민특위위원들을 구속하고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다.

반민특위 활동이 무산되고 그 기능 일부가 법원으로 넘어가자, 그들의 악질 고문 행위가 담긴 문서를 없애고자 조직적으로 발악했다. 진주법원과 대구법원을 방화한 것도 그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이태룡 박사는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가 발굴되지 못한 근본 이유로 판결문 등 공적자료 소실과 독립운동과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부족, 독립유공자 발굴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들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실렸던 진주의병장 정한용조차 아직 포상이 안 되어 있다.

그래서 이태룡 박사는 "독립유공자 공적을 찾는 일이 단순히 판결문을 찾던 시대는 지났다. 국내외 반일투쟁 기록은 일본의 비밀기록을 찾아 이를 번역하는 작업을 거쳐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발굴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타 시도에서는 지자체의 노력으로 독립유공자 발굴에 나선 지 오래되었다. 경남의 지자체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정부에 포상을 신청하고, 포상이 이루어져서 겨레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독립유공자의 공적이 빛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주제발표를 마무리하였다.

두 번째는 전성현 동아대 교수가 '경남지역 3·1운동의 역사적 특징과 현재적 활용'을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경남 지역 3·1운동의 시위 준비와 시위 주체, 시위 장소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잘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특히 기념화의 문제와 유산화의 필요성이 와 닿았는데, 실제 3·1운동이 일어났던 장터나 학교 등에 기념표식을 하여 그것을 통하여 문화유산으로 실제 생활에 연결하여 교육현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은 지금도 대부분 시장이나 장터로 활용되고 있어서 현실적인 좋은 안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도로명으로 활용하자는 것도 문화유산이 생활에 연결되는 좋은 안이었다.

세 번째는 한국민족독립연구원장인 석인선 박사가 '신채호의 역사관과 민족운동'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경남도가 독립운동가 미 서훈자의 서훈을 받기 위하여 TF를 구성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일이 실효성있게 추진되려면 도지사께서 이태룡 박사와 전성현 교수를 직접 면담하여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첩경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학술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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